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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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길거리 셀카·인증샷…당신의 초상권 안녕하십니까

[이슈톡톡] 길거리 초상권 침해 문제
회사원 박모(30)씨는 최근 포털사이트에서 맛집을 검색하다가 한 후기에서 아는 사람의 얼굴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박씨는 사진 속 지인이 사진을 찍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의아했다. 박씨는 지인에게 연락해 사진을 촬영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물었고, 지인은 “몇 달 전 그 식당에 갔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사진을 계속 찍어서 거슬렸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 내 얼굴까지 찍었을 줄 몰랐다. 남의 얼굴을 마음대로 찍었으면 모자이크라도 해서 올려야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황당해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찍은 ‘셀카’와 ‘인증샷’을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고, 인터넷방송 진행자(BJ)들이 생방송 중 예고 없이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의도치 않게 얼굴이 공개된 이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상권 주체의 동의 없는 사진·영상의 촬영 및 유포는 불법행위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나도 모르는 내 사진이 온라인에…“초상권 침해 아닌가요?”

실제 사진·동영상에 기반한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맛집이나 인기 여행지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진과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같은 장소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함께 찍힌 사진·영상들을 모자이크 등의 처리 없이 그대로 노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누군가의 사진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알아서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난 주말 친구와 함께 SNS에서 유명한 카페를 찾았다는 회사원 김모(29)씨는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주더라”며 “다양한 각도로 찍으면서 카메라가 우리 쪽을 향하기도 해서 혹시라도 내 얼굴이 찍힐까 봐 손으로 가리고 있느라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야구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야구장에 자주 간다는 회사원 박모(31)씨는 “뒤에 앉은 사람들이 나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며 “어디에 올릴지도 모르는 사진에 찍히기 싫은 내가 고개를 숙이거나 응원봉으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까지 마음대로 찍는 건 초상권 침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다짜고짜 들이대는 카메라…길거리 인터넷방송 논란도

원하지 않게 자신의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인터넷방송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BJ들이 늘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접근해 인터뷰를 시도하고 신상 정보 등을 묻는 일명 ‘헌팅 방송’이 유행이다.
서울 번화가에서 이뤄진 일명 ‘헌팅 방송’의 한 장면. 유튜브 영상 캡처

주로 서울 강남역이나 홍대 등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서 이뤄진다. 이 경우, BJ들은 대부분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고 카메라부터 들이대기 때문에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모습이 인터넷에 생중계되고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외모 품평을 시작한다. 불쾌하다고 해도 계속 따라다니는 BJ들도 있어 일부러 이 지역을 피해 다니는 여성들이 생길 정도다.

홍대 근처에 살고 있는 회사원 정모(27)씨는 “주말에 동네를 걷다 보면 셀카봉을 들고 중얼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며 “본인은 소통하는 방송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시청자들과 할 일이지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할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송인지도 모르고 누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 모습이 나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불쾌하다”며 “피해 다니기도 힘들어 이제 주말엔 다른 조용한 동네를 찾게 된다”고 털어놨다.

◆“내 모습 찍히는 거 너무 싫어…길거리 인터넷방송 금지해달라”

지난달 26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길거리 인터넷방송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길거리에서 방송하는 BJ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방송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아도 뒤에서 걸어가는 내 앞·옆모습들이 찍히는 게 너무 싫고 피해를 본 국민들도 많다“고 썼다.

그러면서 “원치 않는데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람들도 있다. 주말 강남, 홍대 거리만 가 봐도 알 것”이라며 “나도 모르는 내 얼굴이 나오는 게 싫다. 길거리도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예고 없이 길거리에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BJ들 때문에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이달 25일 마감되는 해당 청원에는 1일 오후 3천7백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얼굴이 온라인상에 떠도는 것을 불쾌해하고 있었다.

◆동의 없는 사진 촬영·유포와 ‘헌팅 방송’은 모두 불법

법무법인 정의 강동원 대표 변호사는 길거리 사진의 초상권 문제와 관련, 자신의 블로그에서 “타인의 초상을 그의 동의 없이 촬영 및 배포하는 행위는 불법행위로써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초상권의 주체가 되는 사람에게 동의를 받지 않고 초상을 찍거나 유포하면 초상권에 대한 침해가 된다”며 “찍는 것에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진을 블로그, SNS 등에 올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송을 하는 배포와 유포에 관해서는 또 별도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그러면서 “동의를 받지 않으면 (사진·영상을) 찍으면 안 된다”며 “초상권 침해 손해배상의 문제가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고소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유념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헌팅 방송’은 모두 불법이다. 신체 일부를 동의 없이 찍어 유포하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또 피해자가 촬영 시점에 동의했더라도 후에 영상을 보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그러나 고소를 위해서는 영상을 증거로 확보해야 하는데 실시간으로 중계된 방송 영상을 피해자가 직접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