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2018 광주비엔날레’의 북한 미술전이 지난 6일 언론 공개 행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6관에 마련된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는 이번 광주비엔날레 7개 주제전 중 마지막 순서다. 전시를 준비한 문범강 큐레이터(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 정권의 지지 속에 동양화를 북한식으로 발전시킨 것을 ‘조선화’라고 한다”며 작품들을 설명해 나갔다.
일본군 성노예 연작 |
“북한 미술의 특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북한 미술에는 신파적인 표현이 있어 힘든 노동 중에도 서로 옷깃을 여며주는 다정한 모습을 담기도 합니다. 특히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이 여성의 표정을 잘 보십시오. 억센 일을 하면서도 얼굴엔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힘들어도 웃으며 가자’는 김정일의 슬로건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면서, 역경 속에서도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키려는 유교사상이 짙게 남은 북한 사회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의 한 장면을 담은 ‘평양성 싸움’도 흥미롭다. 1592년 임진왜란의 대표적 이미지가 한국에서는 명량해전이라면 북한에서는 평양성 전투다. 그림 한가운데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위치한다.
北 작가 7명이 그린 집체화 ‘청년돌격대’ |
이번 광주비엔날레 북한 미술 전시에서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의 정수인 주제화와 한·중·일과 다른 뚜렷한 개성을 지니는 산수화 외에도 북한에서 인기 있는 동물화와 문인화 등 총 22점을 만날 수 있다.
문 교수는 “북한 미술은 선전미술만 있다고 여겨지며 작가의 개성보다는 단일성이 중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이 북한 미술의 전부는 아니다”며 “이번 전시는 북한 미술의 다양성을 전례 없는 규모로 담아낸 최초의 전시로 북한 미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쿠바 작가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1995). 보트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하던 쿠바인들의 위태로움을 표현했다. |
언론 공개행사에서는 광주국군병원만 둘러볼 수 있었다. 교회 건물에 들어서면 공중에 매달린 거울들이 관람객들을 비춘다. 오래된 거울들은 모양도 크기도 무늬도 제각각이다. 실제 병원 내 있던 거울을 모아 설치한 영국 마이크 넬슨 작가의 ‘거울의 울림’이다.
방치되어 수풀이 침범한 병원 본관 건물은 안전 문제로 15명씩만 들어가 관람할 수 있다. 옛 모습 그대로 남은 병실의 철문과 세면대, 욕실 등이 공포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병원 풍경이 주는 무게감이 압도적이어서 어떤 게 작품인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병실 내부에 서 있거나 기대어 있는 오래된 나무토막들이 작품이다. 태국 작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5·18 피해자들을 만나 면담한 뒤 설치했다. 토템 신앙을 바탕으로 희생자들을 위로한다.
광주비엔날레 측은 안전 문제로 병원 건물이 곧 보수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38년 전에 머물러 있는 국군광주병원의 모습을 볼 기회는 이번 전시가 마지막이다. 이곳을 여유 있게 관람하려면 방진 마스크가 필요해 보인다. 건물 내부에 먼지와 석면 가루가 가득해 잠시만 머물러도 코와 목이 따갑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북한 미술과 5·18 관련 작품을 제외하면 딱히 눈에 띄게 들어오는 전시가 없다. 작가 165명이 참여한 초대형 비엔날레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전체적으로 통일성과 집중도가 떨어지며, 특히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리는 1∼4주제전이 아쉽다.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모호한 주제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욱여넣은 탓이다.
작품 수가 많고 전시장도 거대하니 관람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작정 처음부터 꼼꼼히 보다간 지치기 십상이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이어진다.
광주=글·사진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