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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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불신에 수술실 CCTV 논란 재점화…“인권 보호” vs “프라이버시 침해”

[스토리세계-의료인 윤리실종①]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찬반
서울 소재의 회사에 다니는 박모(31)씨는 지금까지 대장내시경을 받아본 적이 없다. 언론을 통해 마취 환자 성희롱 사건 등을 접하면서 병원과 의사에 대한 불신이 커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1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면 내시경은 불안해서 못 하겠다. 내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 아니냐”며 “비수면 위내시경을 하다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다음에도 비수면으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면내시경은 하고 싶지 않아 대장내시경은 꿈도 못 꾼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리수술, 마취환자 성희롱 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환자단체 등은 환자의 인권과 생명 보호를 위해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의사단체는 환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다른 방안 등 사회적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난 5월10일 사복 차림으로 수술실을 빠져나가는 정형외과 원장 이모씨 모습.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대리수술, 성희롱 등 끊이지 않는 수술실 내 사건

2013년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 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의 조사 결과 환자가 마취 상태에 빠졌을 때 집도의를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리수술(유령수술)이 사회적 논란이 됐지만 최근까지도 대리수술뿐만 아니라 마취환자 성희롱·인증사진 촬영 등 수술실 내 비윤리적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5월10일 부산 영도구의 한 정형외과에서 어깨 수술을 받던 환자가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해당 수술을 전문의가 아닌 의료기기 판매업체 영업사원 A씨와 간호조무사가 진행했고, 의료사고가 발생하자 병원 측은 진료기록과 수술 전 동의서까지 조작했다. 경찰은 A씨가 해당 수술실에 9차례 출입한 영상을 확보해 대리수술 여부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5년 전 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면 마취 상태로 옷을 벗고 누워 있는 30대 여성 환자를 의사와 간호사들이 조롱하고 성희롱한 대화가 녹음된 파일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수술실에서 환자를 두고 생일축하 파티를 열고 인증사진까지 찍은 간호조무사들의 만행이 알려져 충격을 줬고, 지난해에는 기증받은 해부용 시체(카데바)를 두고 의사들이 인증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서 파장이 일었다.

성형외과 수술실 생일파티.
온라인 커뮤니티
◆‘수술실 CCTV 설치’ 재차 촉구…“환자의 생명·인권 보호해야”

최근 대리수술 도중 환자가 뇌사에 빠진 의료 사고로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한국소비자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C&I소비자연구소 등 소비자·환자단체는 지난 10일 공동성명서를 내고 “유령수술 근절을 위해 수술실 CCTV 설치, 의사면허 제한, 의사 실명 공개를 포함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술실은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돼 있고 환자의 의식이 없기 때문에 내부 제보나 CCTV가 없는 한 유령수술 시행 여부를 절대 알 수 없다”며 “수술실의 이런 은폐성으로 인해 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반인륜적인 범죄행위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령수술은 의사 면허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신종 사기이자 의료행위를 가장한 상해 행위”라며 “정부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유령수술의 근절을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달 21일 대한한의사협회도 환자의 소중한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수술실 내 CCTV 설치의 신속한 법제화를 재차 촉구했다. 이어 같은 달 23일에는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문제를 논의할 정부-의료계-시민단체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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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반발로 법안 번번이 무산…“사회적 논의 우선돼야”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기 위한 의료법 개정은 과거에도 추진된 바 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지난 19대 국회 때 최동익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두 차례에 걸쳐 수술실 CCTV 촬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환자와 의료인의 사생활 침해, 수술 집중력 저하 등을 우려한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대한의사협회 정성균 대변인은 11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요구와 관련, “환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동의한다”면서도 사회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정 대변인은 “환자, 수술 집도의, 수술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있고,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법제화됐을 경우 나중에라도 수술 장면이 찍히는 걸 원치 않아서 수술하지 않겠다며 반대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며 “그 전에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다른 방안 등 사회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루에 만건 정도 이뤄지는 수술을 다 촬영하는 게 과연 효과적인지, 또 그 장치와 설비 유지비용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먼저 상의한 다음에 정말로 필요하다면 (수술실 내 CCTV 설치 법제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