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이 있는 바로 이 산입니다.”
“구룡봉이 정상인가요?”
“정상은 아닌데 풍경은 최고죠. 이곳에서 길 따라 올라가면 나옵니다.”
장흥 여다지해변엔 바다를 끼고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
그중 유독 장흥 출신 작가들의 글에 눈이 간다. 이청준이 쓴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에 나온 ‘큰산 꼭대기 구룡봉에서 바라본 세상은 끝없이 넓었다. 작은 동산 같은 그의 마을 뒷산 너머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아득히 하늘로 이어져가고 북으로는 수많은 산이 부연 연무 속으로 겹겹이 멀어져가고 있었다.’라는 구절이 문학비에 새겨져 있다. 한승원의 문학비에도 ‘이 관내 모든 학교의 교가 속에 이 장엄한 산이 우뚝 솟아 있듯이 내 육체와 영혼 속에 이 산이 들어와 우뚝 솟아 있다.’는 구절이 새겨져 있다.
천관산문학공원의 이청준 문학비. |
장흥의 바람과 산, 바다, 흙, 사람 등 모든 것이 크든 작든 이청준, 한승원 등 이곳에서 태어난 문학가에게 영향을 주었을 테다. 장흥 곳곳에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둘러보기 위해 문학공원을 찾았는데 단순한 호기심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장흥을 대표하는 작가 이청준과 한승원의 문학비에 거론되는 ‘큰산’과 ‘장엄한 산’이 어딘지 궁금했을 뿐인데 결과는 천관산 산행이었다. 산을 자주 타는 이들이 하는 ‘그리 힘들지 않고,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말에, ‘분명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이 어떤 풍광에 빠져들었는지’를 느껴보고 싶어 발은 이내 흙길을 밟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다. 문학공원을 보러 왔기에 이곳에서 탑산사를 거쳐 아육왕탑, 구룡봉에 오른 뒤 연대봉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가다 다시 문학공원으로 내려오면 된다.
장흥 출신 이청준, 한승원 등 문학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천관문학관. |
숨을 돌린 후 10여분 오르면 산 중턱의 절집 탑산사다. 오르는 길은 숲길이어서 뒤를 돌아봐도 아래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앞이 트인 절 마당에 오르니 대덕읍의 들판과 바다, 다도해 풍광이 펼쳐진다. 산 아래 풍경뿐 아니라 천관산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인 다양한 기암괴석들도 능선을 따라 도열해 있다. 천관산은 다양한 모양의 기암괴석이 주옥으로 장식한 천자의 면류관처럼 솟아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언제부터인지,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몇 번째인지 줄 세울 수 없지만, 그만큼 멋진 풍광을 품은 것만은 확실하다.
천관산 사자 얼굴 형태의 기암괴석. |
천관산 기암괴석 중 하이라이트인 ‘아육왕탑’. |
구룡봉까지는 나무 계단을 오르면 된다. 20여분 정도 올라 이름대로 아홉마리 용이 노닐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구룡봉에 이르면 주위를 가리는 것이 없다. 천관산 정상 연대봉의 높이가 723m이니 구룡봉은 700m 정도 될 듯싶다. 봉우리는 아홉마리 용이 머물렀을 정도로 넓고 평평한 바위이고 그 아래로는 절벽이다. 바위 군데군데에는 공룡 발자국인 듯한 모양의 파인 자국이 있다.
장흥 여다지해변엔 바다를 끼고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
반대편 능선을 따라 돛대를 세워 놓은 듯한 진죽봉과 구정봉 등 웅장한 바위 봉우리들이 정상 연대봉까지 이어진다. 구룡봉에서 능선을 따라가다 만나는 환희대에서는 ‘겹겹이 멀어져가는 산들’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바다에선 섬들이 파도치듯 이어져 있다면 환희대에선 천관산 봉우리뿐 아니라 북쪽으로 솟은 산들의 너울을 볼 수 있다. 능선에선 억새들이 슬슬 파도칠 준비를 하고 있다. 억새밭을 지나 연대봉까지 가거나, 탑산사를 건너편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닭봉 쪽으로 향해 문학공원으로 내려가면 된다. 3∼4시간 정도이면 작가가 바라보며 느낀 그 풍경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전남 장흥 선학동은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 배경이 되는 마을이다. 관음봉 산줄기가 학이 날갯짓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
‘포구에 물이 들면 관음봉의 산 그림자가 거기에 떠올랐다. 물 위로 떠오르는 관음봉의 그림자가 영락없는 비상학의 형국을 자아냈다. (중략) 선학동은 날아오르는 학의 품 안에 안긴 마을인 셈이었다.’
선학동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 촬영 당시 주막으로 사용한 양철 건물이 남아 있다. |
낙지와 키조개 관자, 돼지고기 등을 섞어 얼큰하게 끓여 먹는 낙지삼합. |
장흥의 갯벌에서 자란 키조개 관자와 들판에서 자란 한우, 산에서 캔 표고버섯이 어우러진 키조개삼합. |
장흥=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