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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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마다 정치학교…청년 정치인 등용문 될 수 있을까 [갈길 먼 정치 세대교체]

신인 육성 다양한 시도 / 외형은 그럴싸한데…내실은 ‘속 빈 강정’
‘올드보이(Old Boy).’

최근 여의도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등 60대 후반∼70대 정치인들이 당 얼굴이 되면서다. 그야말로 ‘올드보이 귀환’이다. 국민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외국에서는 40대 정치인들이 소신과 패기로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국정을 주도하는 현상에 대비된다. 정치권 세대 교체에 갈증을 느끼는 국민적 요구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젊은 정치인 양성이 정치권 과제가 된 지 오래다. 한국정치 토양이 인재 발굴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고는 있지만 기존 정당들의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당들은 청년 정치인을 키우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이 선거에 나가 승리하거나 정당 실무자로 들어가 성장하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청년 정치인 육성을 위한 교육체계가 미흡한 데다 정치 신인 등용을 위한 공천체계도 여전히 좁아 개선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실무위주 교육으로 전환해야 하고, 정당 의사결정 과정에 청년들이 적극 참여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존 정치인에게 유리한 공천제도나 선거법을 개정해 정당들이 정치 신인을 원활하게 수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당별 ‘청년 정치인’ 육성바람… 지방선거 출마 다양해져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 49재 추모행사가 열렸던 지난 9일. 각계인사 18인은 노회찬재단(가칭)을 설립하자며 재단 계획 중 하나로 ‘노회찬 정치학교’를 제시했다. ‘노회찬의 꿈과 삶을 이어갈 제2, 제3의 노회찬을 양성하고 지원하겠다’는 게 ‘노회찬 정치학교’ 개설의 주된 이유다.

정의당처럼 다른 정당들도 ‘청년 정치인’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정치스쿨’이라는 이름의 강의를 지난 7월부터 2주 동안 주말마다 실시했다. 올해로 7번째다. 민주당 측은 지난해 있었던 6차 청년정치스쿨 참여자 중 10여명이 올 6월 지방선거에 광역·비례의원에 출마 당선했다고 전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청년국회보좌진 양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닷새간 실무 교육을 한 뒤, 국회의원실에 배치해 정치적 경험을 쌓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한국당 중앙연수위원장인 김세연 의원은 17일 통화에서 “앞으로는 중앙연수원과 당 청년국 등을 통해 당의 차세대 인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청년당선자 워크숍
바른미래당 산하 바른정책연구소가 주관하고 있는 청년정치학교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강연을 들으며 교육을 받고 있다. 바른정책연구소 제공
‘젊은 정치’ 양성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으로는 바른미래당이 꼽힌다. 특히 바른미래당 전신인 바른정당은 정당 초창기부터 ‘청년정치학교’나 ‘목민관학교’ 등을 통해 청년정치인 육성에 적극 나섰다.

각 정당의 이 같은 경쟁은 청년 정치 저변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20∼30대 후보 가운데 광역의원은 46명, 기초의원은 192명 탄생했는데, 이는 4년 전 선거 때보다 각각 26명, 85명이 늘어난 수치다.

◆내실은 아직도 미미… “소모품으로 대하는 문화 버려야”

외견상으로는 청년 정치가 확대되어 가는 듯한 모습이지만, 막상 정당 내 청년 정치인들은 “아직 멀었다”는 의견이 많다. 청년 정치인 육성보다는 젊은 층 ‘표심 공략’ 홍보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문화가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청년 정치인 교육 과정이 ‘눈 가리고 아웅’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부분 강의가 유명 정치인을 섭외해 한두 번 강의를 하고 마는 ‘인맥관리’용 교육과정에 그치고 있다. 정책제안이나 설계, 논평 준비와 같은 기성 정치인이 됐을 때 필요한 필수적 교육은 거의 없다. 민주당 청년정치스쿨이나 정의당 청년정치학교 커리큘럼이 거의 유명 정치인들 강의로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바른미래당이 실시한 바른정치학교 정도가 실무교육에 충실하다는 평가다.
준비된 청년 정치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민주당 장경태 청년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외국은 정책연구기관 등을 통해 청년정치인들이 주요 보직에서 두루두루 경험을 쌓게 하는데, 우리는 지원도 별로 없고 주요 보직을 경험할 기회가 없어 많이 실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 한 관계자도 “한국 정치에서는 실력자가 속칭 ‘꽂아주지’ 않으면 청년 정치인들이 혼자 힘으로 제도권 정치로 들어올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며 “실력자에 ‘줄’을 서는 순간 그냥 한 명의 기존 정치인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실탄’(돈) 문제도 걸림돌이다. 출마할 때마다 내야 하는 기탁금은 물론 아무리 아껴도 수천만원이 훌쩍 넘는 선거운동 비용을 이제 갓 정치권에 발을 디딘 신인 정치인들이 감내하기엔 역부족이다.

◆“젊은 정치인들이 정치권의 희망과 신뢰 회복 지름길”

제도적 미비도 크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 비례대표의 50% 이상을 여성에 추천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정치자금법은 여성·장애인 후보가 출마했을 경우 당에 정당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청년 후보자 지원이나 정당 보조 등의 유인책은 없다. 그러다 보니 각 정당이 공천 과정에서 청년을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정치 혐오 정서까지 합쳐지면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앞으로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두언 전 의원은 “정치인이 ‘3D’ 업종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이런 고비용 구조에 눈을 돌리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선 장단기 대책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청년 정치인에게 정당 내 주요보직을 맡겨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정치불신 문화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