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을 위해 필요하고 옳은 일이라면 국회와 야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박수를 보내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를 위한 대통령의 요청을 고작 자존심을 앞세워 보이콧한다면 옹졸한 처사다. 그러나 돌아볼 구석이 있다. 평양 동행 요청은 삼권분립을 규정한 헌법과 민주주의 차원에서 심각한 의문을 남겼다.
김기홍 논설위원 |
국회의장단과 두 야당대표는 이런저런 이유로 초청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당리당략”으로 폄하했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보탰다. 남북정상회담이 민족사적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국회가 대통령의 국무수행에 함께해야 한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나의 행동이 옳으니 나를 지지해 달라는 사고방식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독선과 오만이 민심을 가린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화해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바라지 않는 국민은 거의 없다. 반대하는 국민이 있더라도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면 ‘하나의 의견으로만 획일화되는 위험한 결과’를 피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는 크고 작은 동심원들이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계절의 변화가 많은 곳일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그런 나이테들이 굵어지면서 나무를 한층 튼튼하게 한다. 민주주의 성장과정은 고목 한 그루의 성장과정을 닮을수록 좋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일본이 미국의 아름다운 섬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공격했다. 미 해군병사 2000여명과 민간인 400명 등 2400여명이 숨졌고 1200여명이 다쳤다. 미국 국민은 분노했고 진주만 기습 이튿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어제인 1941년 12월 7일, 이날은 ‘치욕의 날(the day of infamy)’로 기억될 것입니다”라고 말문을 열며 대일 선전포고에 대한 의회 승인을 요청했다. 일본 응징에 대한 미 국민의 결의는 단호했고 예상대로 상원은 만장일치로 선전포고안을 가결했다. 마찬가지로 만장일치를 확신했던 하원에서는 그러나 388대 1로 반대표가 한 표 나왔다. 반전주의자로서 반대표를 던진 공화당의 지넷 랭킨 의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란 만장일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정치제도입니다. 국가나 사회가 하나의 현안을 두고 하나의 의견으로만 획일화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낳습니다.”
청와대는 국회의장단·정당대표 초청 논란에 대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더 성의를 다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놓친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다시 한 번 큰 걸음을 내딛는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고 북·미대화의 교착도 풀어야 한다”면서 초당적인 지지를 강조했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놓친 것이 크기에 하는 말이다.
김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