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가산동 아파트 옆 지반이 침하된 데 이어 상도동 유치원 옹벽이 붕괴되었다.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송규 안전전문가·기술사 |
이런 사고는 왜 발생할까. 근본적으로는 설계나 시공이 안전에 미흡했든지 아니면 설계와 시공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혔을 수 있다. 과거에는 고층건물이 많지 않고 지하층의 층수도 깊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마다 지반이 다르고 서울만 놓고 봐도 강남과 강북의 지반 형태가 매우 다르다. 그런데도 안전기준 적용은 미흡하다 보니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폭우가 없었더라면 아마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반이 빗물에 씻겨나가지 않았다면 이후 공사가 진행되어 지하 깊이 굴착했던 부분은 다시 단단한 건물 벽으로 채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우가 사고 원인일까. 아니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문명을 짓는 것이기에 이 정도 폭우 수준에 대비해서 안전하게 설계나 시공을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축물의 설계자나 시공자는 사업주나 건축주의 공사비 절감을 위해 법률이나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최대한 경제적으로 지으려고 한다. 그게 회사의 경쟁력이라고 믿는다. 법률이나 규정대로만 하면 안전할까. 여기에 대해 어느 누구도 확실히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안전한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이나 규정만 믿고 그 법과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안전에 하자가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법이나 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최소 규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안전을 위해서는 제반 규정을 넘어 더욱 안전한 건물을 짓겠다는 혁명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운전할 때를 생각해 보자. 나만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 시골길 2차선을 달릴 때 앞에서 덤프트럭이 달려오면 긴장해야 하는 것이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내 건물만 안전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할 수는 없다. 향후 언제든지 내 건물 옆에 어떤 건물이 어떻게 어떤 형태로 들어설지 모르니 건축 당시에 아예 더 안전한 건물로 지어야 한다. 안전에는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으로 보면 이제는 이러한 비용을 감당할 때다.
사고 후 복구비용을 생각해 보자. 초기 투자비용의 수백배 이상이 소요된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사용한 비용은 소모되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도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안전 운전에서 방어운전이 중요하듯 ‘안전방어 시공’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에 피해를 본 옆 건물의 건축은 법률이나 규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처음부터 더욱 안전하게 지었다면 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전은 모든 국민이 ‘더 안전하게’라고 인식을 전환할 때 이뤄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안전에 큰 비용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안전한 대한민국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송규 안전전문가·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