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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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만 깨어있는 알단강… 광물 운송 길을 내주다 [극동시베리아 콜리마대로를 가다]

<3>한디가 - 콜리마도로 건설의 거점/레나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알단강/10월 하순부터 얼어 5월 돼야 녹아/
한겨울 차 오가고 여름 바지선 운항/교량 없어 콜리마대로 제기능 못해/강 유역에 은·운모 등 지하자원 풍부/
자원 개발 위해 한디가 마을 만들어
니즈니베스탸흐에서는 사하공화국 남쪽 네륜그리로 이어지는 연방도로 A360 ‘레나’와 동남쪽 암가로 이어지는 연방도로 R502, 동쪽 마가단으로 이어지는 연방도로 R504 ‘콜리마’ 등 3개의 연방도로가 교차한다. 사하공화국 교통과 물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니즈니베스탸흐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고, 길에 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날 약 419㎞ 떨어진 한디가까지 가야 했다. 한디가로 가려면 알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자동차를 싣고 알단강을 건너는 바지선 운행은 일몰 전 끝난다. 많은 비가 내려 자동차가 속도를 낼 수 없는 지점들이 있어 알단강 포구까지 가능한 한 서둘러 가야 한다. 당일 중으로 알단강을 건너지 못하면 한디가에서 마가단까지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 만일을 대비해 식수를 비롯한 많은 식품을 구입해 차에 실었다.

사하공화국의 민속축제인 ‘으스아흐 축제’와 국제 마유주 축제 등 대규모 행사가 개최되는 ‘메기노-알단’ 마을 민속축제장.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창밖 풍경은 작년에 본 남부의 풍경과 많이 다르다. 작년 네륜그리를 향해 남쪽으로 달릴 때는 연방도로 A306 ‘레나’와 나란히 놓인 철로, 듬성듬성 열을 지어 서있는 자작나무들, 관목 숲, 높지 않은 산들이 보였다. 니즈니베스탸흐에서 동쪽 한디가로 향하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로 호수와 초원, 말이다. 호수가 보이면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짙푸른 넓은 초원이 이어지고 그곳에는 말들이 한가롭게 쉬고 있다.

야쿠트 민속학에 큰 공헌을 한 프세볼로드 이오노프 부부가 살았던 작은 통나무집.
니즈니베스탸흐에서 출발해 약 2시간30분 동안 175㎞를 달려 추랍차에 도착해 ‘차랑’이라는 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많았다. 손님은 주로 근처 농장 노동자들과 화물차 기사들이었다. 간단한 음식이 진열된 판매대에서 음식을 직접 골라 식판에 받고 값을 치른 뒤 먹었다. 사하공화국 전역에서 많이 마시는 체리 열매로 만든 음료 ‘모르스’ 한 컵이 50루블, 우리 돈으로 약 2000원꼴이니 음식값은 그리 싸다고 할 수 없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한 시간 만에 80㎞를 달려 오후 3시쯤 ‘으틱큐욜’에 도착했다. 어느새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가는 길에 잠시 멈추어 19세기 말 ‘야쿠티야’로 유형 와서 야쿠트 민속학에 큰 공헌을 한 프세볼로드 이오노프 부부가 살았던 작은 통나무집을 보았다. 이오노프의 부인 마리야는 야쿠트인이었는데, 그녀는 야쿠트 여성 최초의 학자가 되었다. 이오노프 부부는 기숙학교를 만들어 야쿠트인 아동을 가르치기도 했다. 제정 러시아 말기 시베리아에 유형된 러시아와 폴란드 지식인들이 서양식 교육을 전파했고, 그들의 교육을 받은 현지인들이 시베리아의 사회주의 혁명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이다.

외국에 가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든 메기노-알단 마을의 에펠탑.
도로 상태가 괜찮아 시속 80㎞로 달린 덕분에 알단강 포구에서 바지선을 타기까지 시간이 충분했다. 시간이 남아 포구에서 가깝고, 사하공화국 ‘에펠탑’과 원주민족 축제장소로 알려진 ‘메기노-알단’ 마을에 들렀다.

‘메기노-알단’ 마을의 인구는 약 1000명이며, 젖과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사육이 주수입원이다. 알단강변의 마을은 입구에 세워진 표지부터 이색적이다. 마을 전체가 다양한 색깔로 채색돼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에펠탑’은 마을 중간에 서 있다. 외국에 가보지 못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드넓은 풀밭에 만들어진 민속축제장도 이색적이다. 사하공화국의 민속축제인 ‘으스아흐 축제’와 국제 마유주 축제 등 대규모 행사가 개최되는 곳이다. 넓은 풀밭 위에서 수천명의 원주민이 모여 수일에 걸쳐 민요를 부르며 민속춤을 추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일 것이다.

아무런 표지도 없는 알단강 포구 한쪽에는 모래를 가득 실은 준설선과 여러 대의 차를 실은 바지선이 정박해 있었다. 스타노보이 산맥 북부에서 발원해 레나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알단강은 길이가 2273㎞이고 유량이 러시아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알단’이라는 말은 퉁구스어가 기원으로 ‘물고기’, ‘봄철에 물고기가 모이는 지점’, ‘철’, ‘은’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알단강 유역에는 은과 광물인 운모 등이 있고, 알단강에는 철갑상어가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단강을 통해 각종 광물과 레나강을 통해 운송된 식품, 공산품이 수송된다. 알단강은 10월 하순부터 얼어붙기 시작해 5월이 돼야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바지선을 통해 알단강을 건너는 것은 6월부터 10월 중순까지만 가능하다. 12월 중순 이후엔 얼어붙은 강 위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다. 봄과 가을에는 배가 다니지 못해 자동차로 알단강을 건널 방법이 없다. 따라서 알단강 교량이 건설되지 않으면 콜리마대로는 사하공화국 동부와 마가단주를 잇는 교통로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바지선에 차량을 싣고 조금 지나자 배가 출발했다. 40분 정도 지나서 건너편 강변에 도착했다. 숙소 멀지 않은 곳에서 기계 굉음이 들려와 가까이 가보았다. 철책 안에 철도 객차 4대가 나란히 서있었고, 굉음은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간판에는 ‘한디가 디젤 발전소’라고 적혀 있었다. 한디가는 1980년대부터 추랍차-한디가 고압송전선을 통해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철도 객차를 활용한 디젤 발전소 2곳이 운영되고 있다. 기술적인 이유로 외부에서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면 이 디젤 발전소의 전력을 사용한다.

한디가는 1938년 알단강에 설치된 포구와 1939년 알단강에서 오이먀콘까지의 도로 건설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김민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
1931년 콜리마강 유역에서 금 매장지가 발견되자 소련 정부는 금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도로와 산업시설 건설을 결정하고 그것을 총괄할 기업 ‘달 스트로이’를 조직했다. ‘달 스트로이’는 여러 지역에 교정노동수용소를 운영하고 수형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뼈 위의 도로’라고 불리는 콜리마대로를 건설했다. 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조성된 마을 한디가에서는 1941∼1943년 ‘달 스트로이’ 알단 교정노동수용소, 1951∼1954년 ‘달 스트로이’ 산하 얀 스트로이 교정노동수용소 본부와 러시아 북동교정노동수용소 산하 한디가 교정노동수용소가 운영됐다. 1941년 가을부터 한디가에 수형자들이 도착했고, 1943년까지 한디가에서 카딕찬까지 733㎞ 길이의 도로를 건설했다.

한디가는 현재 인구 약 6000명의 소도시지만, 학생 수 460명의 광산전문대가 있어 광산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지역이다. 한디가 역사향토박물관에는 자원개발과 도로 건설을 목적으로 조성된 도시인 한디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각종 광물 샘플, 자원 개발 및 도로 건설과 관련된 것들이 주로 전시돼 있다. 수형자들의 살과 뼈로 건설된 콜리마 대로를 탐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김민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