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이모(73)씨는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불편하다. 정확하게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다. 이번 추석도 두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까지 모인 자리에서 이씨는 ‘그림자’나 다름없었다. 괜한 지레짐작일까. 하지만 아이들은 물론 아들 내외의 대화에도 그가 끼어들 공간은 없었다.
이씨는 “자식들이 부모 세대와 말 섞길 싫어한다는 신문기사가 머리에 스치더라”며 “싫은 티를 내는 걸 한번 본 뒤로는 말 건네기도 조심스럽다”고 털어놨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랜 세월 ‘늙음’은 ‘지혜’와 동의어로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 노인세대는 온통 조롱, 혐오, 빈곤에 대한 걱정뿐이다. 경로(敬老)를 비꼰 ‘혐로(嫌老)’란 단어가 노인들의 이런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사회가 나서 노인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전국의 청장년층(18∼64세) 500명과 노인층(65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노인인권 실태조사’를 1일 공개했다. 인권위 차원의 노인 인권 종합보고서 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노인 응답자의 26%가 65세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2015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자살사망률(10만명당 자살자 수)은 58.6명으로 전체 자살사망률 26.5명의 두 배가 넘었다. 나이가 들수록 비율이 높아지는데 80세 이상은 83.7명이나 된다.
‘학대나 방임을 당했다’는 물음에 경제사정이 좋은 경우는 ‘그렇다’는 응답이 8.7%였지만 나쁜 경우는 12.7%로 높아졌다. 경제사정에 따라 나이로 인한 차별이나 고독사에 대한 염려도 각각 13.3%포인트, 24.6%포인트씩 차이를 보였다. ‘노후 재정을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는 노인들의 응답이 35.5%나 됐다. 일을 하고 싶어도 나이 제한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58.6%),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하기 일쑤(44.3%)였다.
세대 간 단절도 심각하다. 노인층의 51.5%가, 청장년층의 87.6%가 서로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로 봤다. ‘노인과 청장년 간 갈등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청장년층 비율은 80.4%나 된다. 최근 청년세대에서 노인들을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 ‘할매미’(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할머니), ‘연금충’(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벌레) 등으로 비하하는 것은 이런 단절 현상과 무관치 않다.
인권위 최영애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노인이 되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만큼 모든 노인이 존엄한 노후를 보장받도록 다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수·김주영 기자 wintero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