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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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하러 갔다가 매맞고”…구급대원들이 울고 있다

[스토리세계-매 맞는 구급대원①] 사례와 정책 진단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지난 4월 경남 진주시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던 소방구급대원 2명이 취객에게 폭행을 당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한 상태였던 취객은 자신을 구하러 온 구급대원의 뺨을 수차례 가격하고 발로 정강이를 가격하는 등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구급대원은 구급차를 타고 그를 병원 앞까지 이송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 구급대원은 멱살을 잡혀 목걸이가 파손되는 등 폭행을 당해야 했다.

같은 달, 서울 마포구에선 손에 부상을 입은 한 시민이 출동한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응급처치하던 구급대원의 얼굴을 수건으로 때리고 발로 아랫배를 걷어차는 등 난동을 피웠다. 다행히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시민은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구급대원은 영문도 모른 채 폭행을 당했다.

소방구급대원들이 폭행에 쓰러지고 있다. 구급대원이 구조·구급 활동 중에 폭행·폭언을 당한 건수는 2014년 131건에서 2015년 198건, 2016년 199건, 지난해 167건으로 매년 100건 넘게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4월에는 전북 익산 소방서에서 근무하던 강연희 소방경이 취객에게 폭행을 당해 순직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4월 도로에 쓰러져 있다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던 취객 윤모(48·오른쪽)씨가 구조대원의 얼굴을 손으로 때리고 있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건강 이상 확인하려는데 폭행”...가해자 91%는 주취자

구급대원 폭행은 주로 취객의 건강 이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지난 4월 제주소방서 소속 구급대원은 의식이 없던 취객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폭언과 함께 주먹으로 안면부와 머리를 가격당했다. 지난 3월 광주에서도 구급대원이 취객의 의식상태를 확인하다 그가 휘두른 손에 눈 부위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었다.
지난 5월 3일 고(故)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이 열린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유가족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방관 폭행피해 관련 현황’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설문조사에서 폭력피해를 겪었다고 답한 소방관은 660명에 달했다. 이들이 폭행 가해자로 지목한 608명 중 553명(91%)은 주취자였다.

또 폭행 사건 부상자를 치료하러 갔다가 되레 폭행에 휘말리는 경우도 잦았다. 지난 2월 인천 계양구에 출동한 구급대원은 폭행당한 부상자를 돌보다 폭행 가해자에게 주먹으로 턱을 가격당했다. 폭행 사건으로 인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구급대원에게 욕설하거나 폭력을 가한 것이다.

구급대원들은 구조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폭력 피해자로 집계된 소방관은 602명으로 그중 1명은 사망했고 5명이 중상, 485명이 경상을 입었다. 피해 유형을 살펴보면 602명 중 402명이 타박상을 입었고 34명이 찰과상, 26명이 염좌, 13명이 열상 등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당할 위험 있을 시 경찰도 구급차 동행해야” 청원

구급대원 폭행을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소방관은 지난 5월 국민청원을 통해 구급대원에게 폭행을 당할 위험이 있을 시 경찰에게 동승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구조∙구급대원폭행 등 우려로 막연히 경찰관의 동승동행을 요청하는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자해나 폭행이 발생했거나 목전에 임박한 경우에 한하여 동승을 요청하기로 협의했다”는 소방청과 경찰청의 협약내용을 들어 “(소방청 담당자가) 무능력하다 못해 직무 태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구급대원은 이송하려는 응급환자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신체와 재산에 위해를 입힐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환자의 보호자 또는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게 동승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구급대원의 폭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경찰이 구급차에 동승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해당 소방관은 시행령을 들어 “여기서 ‘위해를 입힐 우려’라는 것은 폭언 및 폭행 위험이 포함되고 관계기관의 공무원은 경찰을 포함한다”고 지적했다. 즉 구급대원이 호신장구를 소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폭행의 우려가 있다면 경찰이 구급차에 동승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방청은 지난 5월 폭행 근절을 위해 구급차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구급대원들의 옷이나 헬멧에 달 수 있는 영상기기 ‘웨어러블 캠’ 지급, 호신용 전기충격봉 소지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모든 소방관에게 웨어러블 캠 등 장비가 지급되지 못하는 등 현실적인 한계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소방관 폭행 징역형은 고작 7%…‘주취 감형’ 등 처벌 약해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에 따라 구급대원을 폭행한 자는 ‘소방기본법’과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반면 2015년 6월부터 올 6월까지 최근 3년간 발생한 608건의 폭행피해 중 징역형이 내려진 것은 44건(7%)에 불과했다. 상당수는 벌금형(206건·33%)에 그쳤으며 집행유예(102건·16%), 기소유예(23건·3.7%) 등으로 처벌을 피해 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취 감형’과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폭행 가해자들의 실제 처벌이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처벌이 약하다 보니 구급대원들은 언어·신체적인 폭력을 당했더라도 보고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소방청은 보고율을 증대하기 위해 폭행피해 구급대원의 반복적 조사를 통한 2차 피해방지, 폭행피해 대원의 휴무보장, 심리상담 등 회복지원을 통해 사건 발생 시 피해 대원이 신속하게 보고하는 유인책을 논의하는 중이다.

◆전문가 “폭행은 심각한 문제 인식부터”

전문가들은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홍보가 많이 된 버스 기사 폭행과 달리 구급대에 대한 폭행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벌칙이 얼마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적극적인 홍보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 교수는 “처벌을 올리는 거보다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하면서 “구급차에도 ‘대원 폭행 시 처벌을 받으니 주의해 달라’는 문구를 크게 붙이고 구급대원 폭행에 대한 심각성을 알려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