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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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저유소 환기구 내 설비는 설계도상 '버드 스크린'이었다

입력 : 2018-10-14 16:21:09
수정 : 2018-10-14 16: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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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화재가 난 경기도 고양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탱크의 환풍구에는 설계도상 새의 진입을 막는 ‘버드 스크린’을 설치하도록 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부터 유증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고 외부 불씨로 인해 불이 붙지 않도록 하는 시설이 미미했다는 얘기다. 공사 측의 부실관리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14일 자유한국당 윤재옥 의원실에 따르면 공사 측이 1992년 고양저유소를 건설하기 위해 작성한 설계도상 해당 440만L짜리 탱크의 환풍구에는 ‘화염방지기(flame arrest)’가 아니라 ‘버드 스크린(bird screen)’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화염방지기는 외부에서 불씨가 유입되면 여러 겹의 금속망으로 열기를 흡수해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막지만, 버드 스크린은 철망식으로 새가 드나들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저유소 내 900만L짜리 탱크의 환풍구에는 탱크 내부 압력을 외부와 평형하게 만들어 유증기가 외부로 새나가지 못하게 해주는 ‘브리더 밸브(breather valve)’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사고 당시 440만L짜리 탱크에서 발생한 거대한 화염에도 인근 탱크의 환풍구로 불이 옮아붙지 않은 것도 이 설비 덕분으로 보인다.

윤 의원실이 이날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한 이송규 안전전문가는 “탱크의 환풍구의 상부와 하부 중간에 막이 있어서 탱크 내 유증기가 상부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실링부품이 있는데 이 부품이 점검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공사 측이 나중에 환풍구에 인화방지망을 설치했더라도 거름망 같은 것이라서 화재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 측이 위험한 유류 저장시설에 유증기 차단 장치를 완벽히 설치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인근 탱크 주변의 잔디 색깔이 초록색인 점을 들어 “스리랑카인 인부가 날려보낸 풍등이 잔디밭에 불이 붙어 이 불이 환풍구로 옮겨갔다기보다는 풍등이 바로 환풍구 유증기에 불을 붙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설계도상으로 문제의 환풍구에 ‘버드 스크린’을 설치한 걸로 미루어 공사 측이 나중에 인화방지망으로 보강했더라도 정기 점검 항목에서 제외돼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금속재질의 인화방지망을 환풍구와 접합하는 우레탄 실링이 낡았더라도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화염방지기나 인화방지망은 불이 붙는 걸 지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한다.

결국 사고 당시 45대의 폐쇄회로(CC)TV를 전담해서 지켜보는 인력이 1명도 없었고, CCTV 통제실 근무자도 18분간 화재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 공사 측에 총체적인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