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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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 잡고 실종자 수색… 재난현장 골든타임 잡는다 [드론, 희망찬 미래로 날다]

‘안전 해결사’ 역할 톡톡 / 영화 속 상상이 현실로/항공촬영·맵핑 등 통해 사고지점 추적/단시간내 원인·피해규모 등 파악 ‘척척’ / 취약·위험지역 모니터링/가뭄피해 관측·범죄순찰 등 사고 예방/배터리·충돌회피센서 기술 개발 관건
“재난 사각지대 해소” 기대/ 정부, 영상정보 분석기술 연구 본격화/ 490억 투입 재난·치안용 드론 개발도
#1. 서울의 한 다중이용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119신고가 접수됐다. 인근 소방서에서 신고자의 위성위치측정시스템(GNSS) 신호를 자동으로 파악한 드론 2대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한다. 시속 200㎞의 속도로 1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드론은 화재 상황을 찍어 상황통제실 모니터에 보낸다. 상황실은 이 영상을 토대로 출동 중인 소방대에 현장 지휘를 시작한다. 동시에 이들 드론이 탑재한 소화탄으로 불길을 누그러뜨리고, 초소형 드론을 떨어뜨려 실내로 진입시킨다. 불에 견디는 내화성능을 갖춘 초소형 드론은 건물 내부를 날며 대피 안내방송을 하고, 건물 내부구조 스캔과 요구조자 파악 등을 하면서 곧바로 상황실과 소방대에 관련 정보를 전송한다.

#2. 지방의 한 화학공장을 야간 순찰 중이던 자동 비행 드론이 탑재된 센서로 화학물질 누출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린다. 추가로 현장에 투입된 드론은 포집기와 센서 등으로 대기 중 오염물질과 풍향, 풍속 등을 파악해 확산 범위를 통제실에 알린다. 드론과 연결된 AI(인공지능)는 오염물질의 위험도와 확산 속도 등을 분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한다. 드론에 장착된 열감지 센서는 오염 범위 내 부상자의 위치를 파악해 구조대에 알린다.

지난 4월 인천 이레화학 화재폭발 현장에서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관계자들이 사고 원인 분석 등을 위해 드론을 띄워 촬영하고 있다(왼쪽 사진). 드론이 찍은 사고 현장 모습.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제공
4차 산업혁명의 첨병으로 꼽히는 드론이 재난·안전 해결사로 진화하고 있다. 드론은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접근하더라도 위험이 따르는 재난 현장에 투입돼 임무를 수행한다. 위 사례들처럼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하고, 불길이나 위험 물질 속을 종횡무진 활약하는 드론들을 볼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

지진이나 산사태, 건물붕괴 등 각종 재난 현장의 골든타임을 연장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드론이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드론, 재난현장 조사에 혁명을 가져오다

14일 국립재난안전연구원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국내 재난·안전분야에 드론이 활용된 것은 4∼5년밖에 되지 않아 그 범위는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현장에서는 드론 도입을 ‘혁명’에 비유할 정도로 전과 후의 변화는 극명하다.

현재 재난·안전분야 드론은 재난 발생 이후 현장 조사 등에 주로 쓰인다. 드론 항공촬영과 맵핑(mapping, 지도구축) 등을 거쳐 사고 발생 지점을 찾아내 단시간 내에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 면적 등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14년 마우나리조트 붕괴현장 조사를 계기로 드론을 이용한 재난사고 원인조사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2016년 태풍 차바 피해 지역과 지난해 포항 지진 피해 현장에 드론을 보냈다. 포항 지진 때 건물의 높은 곳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갈라짐 등을 탐색해 추가 붕괴 위험을 파악하고, 액상화 현상 발생 위치를 파악하는 등 드론을 요긴하게 썼다.

김성삼 재난안전연구원 연구사는 “기존에는 재난 현장에 사람이 사고 원인을 찾고 측량하는 식으로 피해 지역을 조사했지만 드론이 투입되면서 조사 시간을 대폭 줄이고 정확도를 높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 지역 조사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올해도 4월 인천 화학공장 화재를 시작으로 군산 유흥주점 화재, 용산 건물 붕괴사고, 보성군 호우 태풍 피해 지역 등지에 드론을 파견했다. 지난달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현장에 드론이 날아다니며 추가 붕괴 위험을 감지하고 주요 변형 부위 등을 촬영해 분석하는 성과를 거뒀다. 얼마 전 발생한 고양 저유소 화재와 관련해서도 드론으로 원인 조사를 진행 중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관계자들이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드론을 이용해 거동수상자 탐색과 붕괴 등 위험요소 탐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제공
◆드론, 재난 예측 활용도 높인다

산사태나 낙석과 같은 재난사고 취약·위험 지역 모니터링 등에 드론 쓰임새가 늘고 있다. 프로그램에 드론의 해당 지역 촬영 정보를 입력하면 따로 조종하지 않아도 자동 비행으로 입력된 지역에서 수백 차례 촬영하고, 이를 토대로 3차원 공간정보를 생성한다. 이 공간정보는 수목이나 인공물의 분포뿐 아니라 이들 정보를 제외한 지형, 지물 형태 등도 한눈에 보게 해준다. 이를 분석하면 취약 지점을 손쉽게 찾아내고 보수 규모 등의 예측이 가능하다.

김 연구사는 “이런 지역은 대부분 급경사지여서 사실상 사람은 접근이 어렵지만 드론을 활용하면 20∼30분의 촬영, 3∼4시간의 데이터 분석만 거치면 어느 지점에서 산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지 등을 빠르게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산업단지 등 국가 주요시설의 안전사고 모니터링,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등으로 살처분된 가축의 매몰지 관리 실태 감찰에도 드론을 활용한다. 다중분광카메라를 부착한 드론은 저수지의 가뭄피해나 수질관측 등을 한다.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울산지방경찰청과 함께 도보나 차량으로 순찰이 어려운 지역의 범죄예방 감시를 위한 드론 순찰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여름철 해수욕장 등 해안에 드론을 투입해 해파리의 접근이나 이안류 탐지, 수난사고 요구조자 수색 등을 펼친다. 아직 드물지만 야산 등의 실종자 수색에도 드론이 투입되곤 한다. 드론에 열화상 카메라를 부착하면 사람의 체온을 감지하고, 넓은 지역을 잽싸게 수색할 수 있다.

정군식 연구관은 “일반적인 무선 드론은 비행시간이 30여분으로 짧은데 이를 극복할 배터리 기술, 정밀한 충돌회피 센서를 통한 실내에서의 드론 활용 등이 뒷받침되면 앞으로 재난·안전 분야에서 드론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드론 항공촬영과 맵핑을 통한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현장 3차원 지형정보.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제공
◆정부 “드론으로 재난 사각지대 없앤다”

정부는 드론 등으로 정확한 재난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영상정보 분석기술 연구를 내년부터 시작한다. 행안부는 ‘위성·무인기 등 다채널 영상정보를 활용한 연속적 재난상황 인지 및 위험 모니터링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고 이날 밝혔다. 지진이나 대형 화재 등 대형 재난 발생 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드론과 폐쇄회로(CC)TV, 위성·항공촬영 등의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 상황 파악과 신속한 지휘를 하기 위한 연구다. 내년 상반기 중 연구기관을 선정해 2022년까지 4년 동안 추진된다.

정제룡 행안부 재난안전연구개발과장은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당시 폭설이 내린 현장 상황을 알 수 없어 많은 차량이 한꺼번에 출동하면서 오히려 혼잡이 빚어졌다”며 “만약 먼저 드론으로 현장 상황을 미리 파악했다면 차량 통제나 대응 등의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제천 화재 당시 지휘부나 상황실에서 소방 대응 상황 등을 모니터링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었고 포항·경주 지진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위성 촬영에 의존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었다”면서 “재난 현장에서 실시간 활약하는 드론의 영상정보 분석기술 연구는 앞으로 재난 대응 체계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재난·치안 등에 활용하는 드론 개발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소방, 해경, 경찰 등에서 쓰이는 용도별 드론 플랫폼 개발에는 총 490억원이 투입되고, 기간은 2020년까지다. 드론 장비 외에도 시스템통합(SI) 소프트웨어, 원격 관리체계 등 현장대응을 위한 종합 대책이 마련된다.

울산=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