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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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릴 친구·놀 곳이 없어서…온라인 세상을 헤매다 [청소년 氣 살리자]

(17) 스마트폰·온라인에 갇힌 아이들 / 인터넷·게임 중독 갈수록 심각 / 10명중 1명 ‘그들만의 세계’ 빠져 / 왕따 우려·지방거주 학생 더 위험 / 학교폭력 피해 학생 중 게임 중독 33% / 일반의 4배나 높아… 사실상 ‘현실 도피’ / ‘게임 과몰입’ 읍면 25%?광역시 20% / 대도시·농어촌 학생 간 격차도 벌어져 / 성장기 청소년에 신체·정서적 악영향 / 소통 돕는 기기가 되레 현실 단절 불러 / 나라마다 “학교서 스마트폰 금지” 대책
# 1.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박모(46·여)씨는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하는 아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아들 조모군은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부쩍 어두워졌다. 학교에서 어울리는 친구도 없는 듯하다. 아들은 온라인 공간에 몰입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면 하루 6시간 이상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박씨는 아들의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시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불같이 화내는 아들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따금 조군이 친구들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대부분 온라인 용어라서 박씨는 알아들을 수도 없다.

#2. “학교 갔다 돌아오면 게임밖에 할 게 없어요.” 경기도 여주에 사는 최모(17)군은 귀가하면 곧바로 컴퓨터를 켜는 게 일상이다. 최군이 하루 평균 온라인 게임에 쓰는 시간은 2∼3시간, 주말에는 6시간 이상이다. 최군은 자신이 온라인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놀 곳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영화관이나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이 있는 수도권과 달리 최군이 사는 곳은 문화를 즐길 만한 공간이 없다. 친구를 만나려면 큰 결심(?)을 한 뒤 버스를 타고 30분 가까이 나가야 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과 온라인 공간에 갇히고 있다.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스마트 기기가 오히려 아이들을 현실 세계로부터 단절시키고 있다.

17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학령전환기 청소년(초등 4학년, 중·고 각 1학년) 129만1546명 중 10.9%인 14만421명이 인터넷에 중독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청소년도 12만840명에 달하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동시 중독된 학생들도 6만4924명이나 됐다. 최근에는 ‘왕따(집단따돌림)’ 위험에 노출되거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이 더욱 사이버공간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학교 적응 못할수록 중독 위험

따돌림 등 학교폭력 위험에 노출된 학생은 다른 학생에 비해 온라인과 게임 중독에 빠질 위험이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최근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따돌림을 받는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현실을 도피하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임현우 교수팀에 따르면 2015∼2017년 서울과 경기도에 위치한 21개 초·중학교 학생 1920명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왕따 피해 위험이 있는 33명 중에서 하루 평균 2시간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는 ‘게임 중독 고위험군’에 속한 학생은 12명으로 33.3%에 달했다. 반대로 따돌림 위험이 없는 학생 1666명 중 게임 중독 고위험군에 속한 학생은 122명으로 7.1%에 그쳤다. 따돌림 피해 우려가 있는 학생 221명 중에서도 게임에 심각하게 중독된 학생은 14.9%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피해에 노출돼 있는 학생들이 게임 중독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따돌림 피해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도피의 마음이 커지면서 온라인 게임 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연구팀 분석이다.

연구팀은 “스트레스로 두려움과 긴장 등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며 “감정 해소의 출구가 부족한 청소년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해소하기 위해 온라인 게임을 더 이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단적인 현실 부적응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에는 인천시 연수구에서 학업에 적응하지 못해 고교를 자퇴한 김모(17)양이 온라인상에서 가상의 자아로 지내는 ‘역할 카페’를 통해 알게된 박모(19)양을 위해서 초등학교 2학년 여아를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온라인 중독도 도시·농촌 격차 커

최근 스마트폰과 온라인 게임 중독 현상은 서울과 광역시 등 대도시와 농어촌 간 격차가 발생했다. 다른 도시보다 놀이·학습 시설이 많은 대도시일수록 게임에 중독된 학생 수는 인프라가 부족한 소도시에 비해 적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온라인 게임이 아니더라도 카페나 영화관 등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놀이공간이 아니더라도 대체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대도시 특성상 학업에 매달리면서 상대적으로 게임을 할 시간이 적은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김모(16)양의 하루 스마트폰 이용시간은 2시간 이하다. 온라인 게임은 전혀 하지 않는다. 김양은 “학교 갔다가 학원 다녀오면 곧바로 잘 시간이라 스마트폰을 만질 시간이 별로 없다”며 “친구들과 굳이 게임을 할 바에 만나서 놀러 다니는 게 더 재밌다”고 말했다.

반면에 경기도 포천에 거주하는 박모(16)양은 “주말이나 방과 후에 친구를 만나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나 의정부시까지 나가야 한다”며 “친구들과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야기하고, 할 게 없어 게임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초·중·고교생 18만5035명을 대상으로 ‘게임 과몰입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일주일에 6∼7일 게임을 이용한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은 서울 21.3%, 광역시 20.4%로 나타났다. 반면에 중소도시 학생은 25.8%, 읍면에 거주하는 학생은 25.5%에 달했다. 일주일에 4∼5일 게임을 한다고 대답한 학생 역시 서울(16.5%), 광역시(15.6%)보다 중소도시(18.1%), 읍면(17.1%)이 다소 높게 나타났다.

◆스마트폰 중독 연령이 낮아진다

네 살 아들을 둔 이모(31·여)씨는 아이가 유튜브 영상을 찾으며 울 때마다 걱정이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서 켜주면 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고 조용해진다. 이씨는 “애한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게 꺼려지면서도 아이를 돌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꺼내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연령층은 청소년에서 미취학 아동으로 낮아지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보기 편하다는 이유로 유튜브 등 채널로 아이들을 몰아넣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켜주면 부모로서는 자유의 시간을 얻지만 장기적으로 자녀 교육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7년 인터넷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 만 3∼9세 유·아동의 스마트폰 중독 비율은 2015년 12.4%에서 2016년 17.9%, 2017년 19.1%로 늘어났다. 특히 부모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유·아동 자녀가 중독 위험군에 속하는 비율이 25.4%로 일반군보다 5.2% 높았다. 부모의 스마트폰 이용 습관을 아이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스마트폰으로 양육하는 것은 나중에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라며 “아이들이 책이나 살아있는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은 아이들의 스마트폰과 게임 중독 현상을 경고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달 3일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미국과 캐나다도 생후 24개월 이전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의 전자기기를 금지할 것을 권고한다.

전문가들은 두뇌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장시간 노출되면 강렬하고 자극적인 콘텐츠에만 반응하는 등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발달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인해 거북목이나 안구 건조증이 발생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2012∼2016년 ‘VDT증후군(전자기파가 유발하는 두통·시각장애 등의 증세)’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9세 이하 아이는 8만2000여명에 달했다.

올해 세계보건기구(WHO)도 게임중독을 국제질병분류(ICD) 11차 개정에서 정신건강질환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WHO는 “게임중독을 국제질병분류에 포함하면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게임중독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 개발이 이뤄지며, 전문가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