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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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건강 염려증

나이팅게일은 1856년 크림전쟁터에서 돌아왔을 때 심장병에 걸려 돌연사할까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무려 54년을 더 살아서 90세까지 장수했다. 히틀러는 대중연설 탓에 목이 늘 쉬어 있어 후두암으로 죽을까봐 공포에 시달렸다. 찰스 다윈은 헛배부름을 호소하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나 에드거 앨런 포 같은 문인도 다윈과 비슷한 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염려증이란 사소한 신체적 증세를 심각한 질병으로 확신해 두려워하는 증상이다. 기침이 잦다고 스스로 폐렴이 아니냐고 걱정하는 식이다.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근거도 없는 질병의 공포에서 6개월 이상 벗어나지 못한다면 ‘건강염려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한국인의 걱정은 유별난 데가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4∼5%, 병원을 찾는 환자의 15% 정도가 건강염려증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이 얼마나 건강에 신경 쓰는지 그제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18 OECD 보건통계’ 자료를 보면, 2016년을 기준으로 만15세 이상 한국인 중에서 자신의 건강상태가 양호(좋음·매우 좋음)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2.5%에 그쳤다. OECD 평균 67.5%보다 훨씬 낮다. 반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16년 기준으로 82.4세(남자 79.3세, 여자 85.4세)로 OECD 평균인 80.8세보다 높았다.

한국인은 OECD 국가 국민 중에서 병원에도 가장 자주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가 한국은 연간 17.0회로 OECD 35개 회원국 중 가장 잦았다. OECD 평균 6.9회를 훌쩍 넘겼다. 잦은 병원 방문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김치와 건강염려증이 한국인을 장수하게 만든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부작용이 생기는 법. 건강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 예사로 넘겨서는 안 되겠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