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에 따르면 노동자ㆍ군인ㆍ군속으로 강제동원됐던 한국인 피해자는 103만2684명이다.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은 794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독립 70여년이 지난 이제서야 우리 사법부가 반 인권 범죄의 피해자였던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결론과 일본의 피해보상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재상고심이 일본기업에 배상을 하라는 판단을 할 경우 국제사법거래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설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를 시도하자 경찰이 해산에 나서면서 격렬한 몸싸움을 빚었다. 연합뉴스 |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가 판단할 이번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상고심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에서 내려진 일본법원의 판결이 우리 헌법에 어긋나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당초 이 사건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일본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는 1941∼1943년 구 일본제철에서 강제노역한 여운택(95)씨와 신천수(92)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 일본제철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후 2005년 여씨 등이 서울중앙지법에 같은 내용으로 소송을 냈지만 1·2심 재판부는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 일본제철이 승계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 등을 적용한 일본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준 돈 3억달러와 빌려준 돈 2억달러’...피해 보상됐나
이번 판단에는 여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진행된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는지도 포함된다. 당시 일본측이 제공한 무상 3억 달러와 차관 2억달러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이 모두 포함돼었는지가 쟁점이다.
우리 1·2심 법원은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기 때문에 이미 배상금이 지급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협정에는 양국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당시 한국에 5억달러의 경제지원을 실시함으로써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협정에 따라 전체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개인 청구권 문제도 해결됐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반인륜 범죄 ‘강제징용’ 두고 재판 거래 의혹까지
이번 재판은 최근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공모해 고의로 재판을 5년간 지연하는 등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검찰이 확보한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외교부로부터 해외로 파견할 법관 자리를 더 얻어내겠다는 의도를 갖고, 외교적 마찰 소지가 있는 강제징용 재판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외교부 입장을 반영해 재판을 미룰 방안으로 심리불속행 기간을 자연스럽게 넘기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또 징용소송 재상고심이 대법원에 접수된 직후인 2013년 10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청와대를 찾아가 주철기 당시 외교안보수석에게 소송의 향후 방향을 설명하고 법관 해외파견을 늘려달라고 부탁한 단서를 확보했다.
낙서가 쓰여져있는 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에 설치된 한반도 출신 강제징용 희생자 추모비. 연합뉴스 |
이인복·김능환·안대희·박병대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1부는 여씨 등을 일본인으로 보고 재판에 적용될 준거법으로 외국적 요소를 고려한 국제사법이 아니라 일본법을 적용한 점,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하에 일제의 총동원령과 국민징용령을 유효하다고 평가한 점에 대해 우리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파기환송심이 대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에 재상고심에서도 ‘우리 법원이 일본법원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조약의 해석에 관한 사건이라는 점을 들어 일본 측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전쟁범죄를 국제적으로 알릴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손해가 아니라는 주장과 우리 측이 불리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