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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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 유물, 박물관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다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마련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전체 유물 16만2578점. 이 중 5만303점(30.9%)이 기증품이다. 어렵게 모은 수집품을 대중과 공유하고자 한 기증자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문화재 전문박물관의 3분의 1 정도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소장 대상이 생활용품, 민속품 중심이라 기증품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정이 있기는 하나 다른 박물관 역시 기증은 소장품 확대의 주요한 통로다. 이런 선한 의지와 실천을 기리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 기증품 중심의 전시회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17년 한 해 동안 기증받은 자료 중 100여점을 모아 ‘기억의 공감共感, 2018년도 기증자료전’이란 제목으로 전시실을 꾸몄다. 박물관 관계자는 “지난해에 92명이 3837점을 기증했다”며 “개인의 이야기가 담긴 자료를 공유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기억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기 위함”이라고 전시 의도를 밝혔다.


‘조씨삼형제 초상’은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희귀성을 인정받아 2006년 보물 1478호로 지정됐다.
◆유물의 공유, 선한 의지와 실천

서병현·남현자씨는 평생에 걸쳐 수집한 276건 1002점을 기증했다. 민물낚시 도구가 주를 이루지만 그것을 제작한 도구나 도구의 원재료 등도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은 “기증자가 한민족이 어떤 지혜를 가지고 민물낚시를 이어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을 체계적으로 모아야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모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눈에 띄는 것은 민물낚시 도구 ‘견짓대’. 견지낚시는 견지에 낚싯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방식이다.

신좌섭씨가 기증한 ‘분합문’(分閤門)은 대청마루 앞으로 한 칸에 네 짝씩 드리는 긴 창살문으로, 기증자의 어머니인 인병선 전 짚풀생활사박물관장이 수집한 전통 창호 84건 182점 중 대표작이다. 1970년대 농촌 근대화 작업으로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전통가옥이나 사찰의 문이 신씨의 기증품에 속해 있다.

이원재씨는 자신의 7대조 때부터 약 200년간 사용해 온 제사용품을 기증했다. 이 중 ‘제사상’은 강원지역 사대부 집안의 제사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이씨는 강릉 선교장 이내번(1703∼1781) 집안의 친척이다.

장경호·장신자씨는 ‘삼층농’을 내놓았다. 1911년생인 기증자의 어머니가 19세에 결혼할 때 구입한 혼수품이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 의미가 각별할 뿐만 아니라 상단에 거울이 부착된 모습 등이 1930년대 제작된 삼층농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지난해 기증된 분합문은 우리 민족 생활양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유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지난해 기증된 견짓대는 우리 민족 생활양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유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서양인 얼굴의 율곡’, 기증으로 맺은 특별한 인연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증을 받기 시작한 것이 1964년이다.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특별한 인연으로 기억되는 기증품들도 적지 않다.

1993년 12월 한국 성형외과 분야의 선구자인 정성채 박사가 2876점의 수집품을 기증했다. 최초의 주화 동전인 고려시대 건원중보(乾元重寶)를 비롯해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등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화폐를 망라한 것이었다. 그의 기증품으로 2011년 특별전이 열렸는데, 영국에서 제작돼 서양인의 얼굴을 한 율곡 이이의 초상이 그려진 5000원권 지폐 등이 출품돼 화제를 모았다.

1994년 7월 평양조씨 문중을 대표해 조진호씨가 기증한 초상화는 박물관 소장품이 되면서 가치를 제대로 공인받은 사례다. 충남 예산의 평양조씨 승지공파 문중은 가보로 전해 오던 영정을 기증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인물인 조계, 조두, 조강 형제의 얼굴을 한 폭에 담은 초상화였다. 맏형인 조계를 중심으로 삼형제를 삼각형 구도로 배치해 “희귀한 형식의 집단화상으로서 의의를 지닌다”는 평가를 받아 2006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이동영씨 기증의 ‘만인산’과 국립민속박물관의 인연은 특이하게 시작됐다. 이씨는 1878년 평안도 초산부사를 지낸 자신의 선조 이만기가 어진 정치를 펼쳐 백성들로부터 받은 만인산을 KBS의 유물감정 프로그램인 ‘TV쇼 진품명품’에 내보냈다. 감정가는 무려 1억500만원. 이 방송을 본 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제안한 것이 기증으로까지 이어졌다. 2009년 10월 기증 당시 이씨는 “조상 유품을 장롱에 넣어두고 혼자 볼 게 아니라 함께 공유해 문화재 연구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국립민속박물관 김종규 학예연구관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물 기증의 저변이 더욱 확대됐다”며 “기증 의사를 밝힌다고 하더라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소장품을 공유하려는 의지를 가진 분들이 알려진 기증자들보다 많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