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회계법인 노조 출범 위원회 관계자는 31일 “회계사들은 일주일에 80시간, 100시간을 넘게 일하고도 52시간을 이상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근로자에 대한 복지뿐만 아닌 전반 사항이 근로자와 논의되지 않고 임원들 입맛대로 결정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노조 출범이후 정식으로 회사에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2일까지 노조 가입신청을 받고 18일까지 내부 의견을 수렴한 뒤 보름을 전후로 정식 출범하겠다는 계획이다.
회계업계에서 노조 설립은 다소 이례적이다. 나머지 ‘4대 회계법인’들 모두 노조가 없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부터 진행된 근로자대표 선거에서 사측이 당초 공지와 달리 후보자 두 명을 공동 대표로 선출하면서였다. 여기서 선출된 근로자대표가 사측과 주 52시간 근무제 관련 사안들을 합의하게 된다. 사측은 지난 24일 두 명의 대표자를 선정한 결과를 공지하며 “상위 득표자 후보 두 명의 합산 득표율이 (선출 조건인) 50%를 넘었다”는 논리를 내놓았다. 원래대로라면 과반득표자가 없을 경우 최상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진행하게 된다. 회계사들은 “찬반투표까지 갔을 경우 반대가 더 많을 것을 우려한 회사가 ‘꼼수’를 부렸다”는 입장이다.
한 회계사는 “‘사사오입’식 선정 과정도 문제지만 유연근무제가 사측 입맛대로 결정되면 장시간 노동이 외려 당연시되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게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회계사들은 즉각 임시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이런 내용을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려 했으나 신고자의 신상유출 우려가 제기되면서 노조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회계사들의 거센 반발에 사측은 일단 진화에 나선 상태다. 기존 투표에서 득표율 1위 후보자를 대상으로 찬반 투표를 조만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근로자 대표 공동선출은) 1·2차 투표율을 감안했을 때 부결될 가능성이 높아 다시 처음부터 프로세스를 밟아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라고 판단했다”며 “고용부나 노무사 쪽으로부터 ‘공동대표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받고 진행한 일이다. 이런 일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아무래도 서투른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진통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업무 특성상 계절성을 타거나 고강도 노동이 관행처럼 당연시되던 전문직종의 경우 우려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윤상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는 “회계사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직, 프로그래머 직종 등 고도의 지적 업종은 ‘시간’이란 하나의 기준만으로 노동 여건을 평가하기 어렵다”며 “일부 업종에 한해 현행법 상 최장 3개월 정도인 유연근무제 도입 범위를 1∼2년 정도로 넓히고 사측과 노동자들이 꾸준히 소통하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이조은 간사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했음에도 노동자들이 여전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면 기본적으로 인력을 더 충원하는 게 맞다”며 “노동시간을 점진적으로 감축한 선진국들의 사례에 비쳐 한국에서만 업종의 특수성을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