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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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방송인·학자로 거듭난 정재환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

40대에 일본어 독파하고, 최근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 출간 / 나이 40에 대학 입학하고, 13년만에 박사학위 취득 / 30대엔 한글문화연대 결성하고 대학에서 한국사 강의

개그맨에서 사회자, 교수 등으로 자신의 길을 넓혀온 방송인 정재환 씨는 한글문화연대의 산증인이다. 그는 한글문화연대 결성에 앞장서며 우리말 사랑에 빠졌다. 20살이 되기 이전인 1979년 시작한 개그만 활동은 1995년 접었다. 당시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개그맨 활동을 접기엔 아까운 나이였다. 그런 그가 37살에 갑자기 술을 끊었다. 주위에 선언을 하지 않고, 실천에 옮긴 금주였다. 금주에 따라 시간이 남자 부지런히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인생엔 새로운 도전이 이어졌다. 첫 도전은 대학 입학이었다. 청년 시절 대학교 공부를 포기했던 그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살에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1961년생인 그가 2000년에 대학에 입학하자 많은 신문과 방송이 그의 입학을 대서특필했다. 그의 속깊은 도전은 시작에 불과했다. 3년만에 수석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2007년 석사와 2013년 박사 학위를 연이어 취득했다. 40살 대학에 입학해 53살에 박사가 된 점을 고려하면, 그는 확실히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작 그는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하며 책상에 앉아 치열한 사투를 견뎌왔다.

 

개그맨과 방송인의 길을 걸었던 그가 새로운 분야에서 일궈낸 성취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그의 도전이 인기 방송인의 ‘반짝 도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겹쳐서 일하는 것도 특이했다. 한글문화연대를 결성한 때는 대학에 입학하던 2000년 무렵이었다.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사랑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풍성한 ‘말의 유희’가 넘치는 개그맨 활동을 그만두고 묵직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이때 싹텄는지 모른다. 그의 사랑은 한국사를 좀더 공부를 깊게 하기 위한 행보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와 영어에 연이어 손을 댔다. 석사 과정에 입학한 뒤엔 일본어 공부에 파묻혔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엔 영어 공부에 나섰다. 일본어 공부는 관련 자료를 찾고 논문을 쓰기 위해서였으며, 영어 공부는 외국인에게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 한 선택이었다.

물론 그의 외국어 도전이 온전히 학문과 강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부차적으로는 ‘외국어 울렁증’을 극복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의 한 자락에는 인생 100세를 사는 글로벌 시대에 온전히 소통하고 싶다는 소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아도 서울 명동 등 곳곳에서 외국인이 넘치는 요즘의 환경을 고려할 때 외국어는 이제 일부 국민만 알아도 되는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50∼60대가 젊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 구사해야 할 필요가 없던 외국어가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대상이 됐다는 게 정 씨의 생각이다.

정 씨는 이런 생각을 최근 출간한 ‘나는 오십에 영어를 시작했다’(보누스)에 소소하게 담았다. 같은 세대를 향한 고민과 애정이 듬뿍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책 표지 부제부터 눈길을 끈다. 부제는 ‘어른을 위한 공부법은 따로 있다. 정재환 교수의 리스타트 영어’이다. 제목과 부제에 정 씨의 신간 저술 의도가 그대로 묻어나 있다.

정 씨를 최근 만났다. 개그맨과 방송인, 학자의 영역을 넘나드는 그는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지난 6월 이후 ‘움직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스쿠터를 타기 시작했다고 했다. 시간이 절약되고 이동에 편리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권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10월이면 더욱 바쁜 사람이다. 한글과 역사, 독서 등과 관련된 각종 현장에서 그를 부른다. 최근엔 방송 출연 횟수도 늘고 있다. 10월 말에 ‘잊혀진 계절’의 주인공 가수 이용이 있다면, 한글날이 있는 10월 초엔 방송인 겸 학자 정재환이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이날 만남도 우리 역사와 관련된 행사의 사회자로 나섰다가 그가 행사 이후에 시간을 내면서 가능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쿨 FM ‘박명수의 라디오쇼’에 대한 이야기부터 물었다. 그는 “우리말과 우리글은 물론 역사와 한글 소설 등 여러 이야기를 다루는데, 20분 방송 준비를 위해 거의 하루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우리말을 사랑하고, 무엇인가를 세밀하게 준비하는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답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후배인 박명수 씨는 “한글을 사랑하는 분이 (영어 공부를 하자는) 신간을 낸 것은 앞뒤가 안 맞다”는 말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글날 다음날인 지난달 10일엔 tvN 프리미엄 특강쇼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한글, 위대한 유산’이라는 주제로 한글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50대를 포함한 중년이라면 새로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에 부담감을 표출할 수 있다’는 질문에 “생활이 어렵다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공부는 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예전에 비해 도서관도 잘 돼 있어서 책값도 많이 안 든다”며 “외국어 공부가 힘들다면 다른 공부를 해도 좋다”고 조언했다. 가령 커피에 대해서 공부해도 좋고, 춤과 댄스에 대한 공부를 해도 좋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공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정 씨는 자신의 전공 학문에 대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일제시대 독립운동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중국 집안과 단둥, 압록강 일대를 방문했다. 그는 “역사학 교수 3분이 함께 한 방문이었든데, 시인 윤동주의 묘지 앞에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에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우리글을 사랑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시인에 대한 안타까움에 정 씨는 그날밤 숙소에서 시를 쓰기도 했다. 시인을 추모하며 마음을 다잡았을 정 씨의 모습이 겹쳐졌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