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1980년 작품 ‘작은 전기 의자(Small Electric Chairs)’ 경매는 공동구매 형식으로 진행됐다. 영국의 갤러리 대디애니와 예술 투자 플랫폼 매세나스가 경매를 진행해 작품가 560만달러(약 63억원)의 31.5%에 해당하는 170만달러(약 19억원)가 모금됐다. 참가자들은 가상화폐로 금액을 지불했고,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자산가치를 증명하는 디지털 인증서가 발행됐다. 미술품은 저금리시대 높은 수익률을 안겨줘 대체투자처로 관심받았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엔 진입장벽이 높았다. 핀테크와 미술의 만남은 누구나 소액으로 쉽게 미술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고 있다.
사진제공=투게더앱스 |
◆피카소 작품을 1만원으로 공동구매
4일 미술·금융업계에 따르면 소액으로도 예술작품을 투자·소유할 수 있는 미술품 공동구매 시장이 국내에도 생겨나고 있다. 미술품 공동구매는 여러 명이 함께 미술품을 구입해 소유권을 나눠 갖는 것을 뜻한다.
지난달 30일 온라인 플랫폼 아트앤가이드는 김환기 화백의 ‘산월’을 국내 처음으로 온라인 미술품 공동구매로 진행했는데 7분 만에 구매 완료됐다. 공동구매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30명이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게 참여했고 30∼40대가 12명(63%)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최소 100만원부터 투자해 총 4500만원을 투자했다. 확정된 공동소유권은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서울시 반포동에 있는 라운지에서 개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바로 다음날인 1일 또 다른 플랫폼 아트투게더는 파블로 피카소의 ‘순회 희극배우들과 부엉이’(Halte de comediens ambulants avec Hibou) 공동구매를 진행해 1분 만에 마감됐다. 38명이 각각 1만원부터 투자해 수수료를 포함해 총 3091만원이 모금됐다. 평균 투자금액은 약 80만원이고 10만원가량의 소액투자자도 전체의 약 3분의 1로 다수를 차지했다.
이들 회사는 이용자들이 소액으로 명작을 향유하게 하고 가치가 올랐을 때 판매해 수익도 낸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아트앤가이드는 회사도 지분을 일부(최대 13.3%) 보유해 작품을 공동소유하고 보유기간 내 경매를 통해 예상 수익률(20%)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2년 안에 예상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소유권자의 동의를 얻어 보유기간을 연장하거나 즉시판매를 하게 된다.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는 열매컴퍼니의 김재욱 대표는 “펀드매니저와 미술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품 투자가 즐겁고 가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거래수수료를 받지 않고 회사도 공동구매자로 직접 참여해 향후 투자이익을 나누는 방식이며, 소유권과 거래기록은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트투게더는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자금을 모아 작품의 지분을 모두 공동구매자에게 양도하는 방식이다. 작품은 서울 역삼동에 있는 전시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고, 일정 금액 이상 구입하면 미술 행사 참석권 등의 리워드도 받을 수 있다. 향후 매각해 얻은 수익이 공동구매자에게 분배된다.
이상준 아트투게더 대표는 “미술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작품을 생활 속에서 온전하게 소유하고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향후 미술품 임대와 공공장소 상설 전시, 회원 교류 행사 등을 통해 폐쇄적이었던 미술품 시장의 대중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미술시장으로 소액투자자 유입
전 세계적으로도 미술품은 투자 가치는 높지만 폐쇄적 시장구조 탓에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라인을 통해 소액투자자의 유입이 늘고 있는 추세다.
테파프(유럽아트페어)가 올해 발간한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미술시장 규모는 637억달러(약 71조원)이다. 2016년의 569억달러(약 64조원)에 비해 약 12% 성장했다. 세계미술시장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작품판매와 거래가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특히 온라인 미술시장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31억달러(약 3조 5000억원)였던 규모가 지난해 54억달러(약 6조원) 커졌다. 보고서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미술시장에 비해 온라인 미술시장에서 저가의 미술품 거래가 활발해 새로운 투자자 유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대부분은 온라인 미술품 경매나 여러 작품을 비교·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 형태이지만 미술품 공동구매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기본 개념은 비슷하지만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지난해 설립된 영국의 ‘페럴 호시스’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신진 작가의 작품에 투자해 공동소유하는 후원자를 모집한다. 이탈리아와 미국 기반의 기업 ‘룩 래터럴’은 미술시장의 투명성과 접근성, 유동화를 강조한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온라인 투자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를 모으고, 자산을 토큰이나 코인으로 바꿔 원본데이터 대신 사용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거래를 저장한다. 토큰은 기본자산인 예술작품과 함께 가치가 변동하고, 미술작품을 거래하기 위해 토큰을 교환한다.
특히 이들 신생 업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예술이 아닌 금융 분야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글로벌 미술전문매체 아트페이퍼는 최근 보도를 통해 이같이 전하며 “금융·기술업체들이 미술품에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찾으면서 자산 토큰화, 소유권 분할, 헤징(위험상쇄), 파생상품 등 금융계에서 통용되던 용어가 미술시장을 휩쓸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민감한 미술품 투자, 기다림 감내해야
사실 미술품 공동구매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소유권 분할이 어렵고 이용자의 참여가 저조해 ‘스플릿아트’ 등의 초창기 미술품 공동구매 업체는 대부분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10여년 전 여러 증권사에서 미술품 간접투자 상품인 아트펀드를 잇달아 내놨지만 글로벌 미술시장의 침체와 함께 처참한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투자상품으로서의 미술품은 희소하기 때문에 인기 작품의 경우 꾸준히 가격이 상승하지만 경기에도 민감한 특징이 있다. 거래도 매우 드물게 일어나 판매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짧게 수년 이상의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보관과 유지비용, 다른 상품과 비교해 높은 거래 비용은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요소다.
특히 이제 막 국내에 등장하기 시작한 미술품 공동구매는 정식 투자상품이 아닌 미술품 소유와 공유 모델이다. 미술품 투자가 목적일 때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술품 공동구매는 미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개인 투자자에게 문턱을 낮추고 미술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면서도 “앞으로 법적으로 소유권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지, 작품 판매·대여 등과 관련해 공동소유자들의 이견이 있을 때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의 주체는 누가 될지 모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4일 미술·금융업계에 따르면 소액으로도 예술작품을 투자·소유할 수 있는 미술품 공동구매 시장이 국내에도 생겨나고 있다. 미술품 공동구매는 여러 명이 함께 미술품을 구입해 소유권을 나눠 갖는 것을 뜻한다.
지난달 30일 국내 첫 온라인 미술품 공동구매를 통해 판매된 김환기의 ‘산월’. 아트앤가이드 제공 |
바로 다음날인 1일 또 다른 플랫폼 아트투게더는 파블로 피카소의 ‘순회 희극배우들과 부엉이’(Halte de comediens ambulants avec Hibou) 공동구매를 진행해 1분 만에 마감됐다. 38명이 각각 1만원부터 투자해 수수료를 포함해 총 3091만원이 모금됐다. 평균 투자금액은 약 80만원이고 10만원가량의 소액투자자도 전체의 약 3분의 1로 다수를 차지했다.
피카소 작품 '순회 희극배우들과 부엉이'. AT Gallerey |
아트앤가이드를 운영하는 열매컴퍼니의 김재욱 대표는 “펀드매니저와 미술관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품 투자가 즐겁고 가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며 “거래수수료를 받지 않고 회사도 공동구매자로 직접 참여해 향후 투자이익을 나누는 방식이며, 소유권과 거래기록은 블록체인으로 투명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트투게더는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자금을 모아 작품의 지분을 모두 공동구매자에게 양도하는 방식이다. 작품은 서울 역삼동에 있는 전시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고, 일정 금액 이상 구입하면 미술 행사 참석권 등의 리워드도 받을 수 있다. 향후 매각해 얻은 수익이 공동구매자에게 분배된다.
이상준 아트투게더 대표는 “미술품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작품을 생활 속에서 온전하게 소유하고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향후 미술품 임대와 공공장소 상설 전시, 회원 교류 행사 등을 통해 폐쇄적이었던 미술품 시장의 대중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미술시장으로 소액투자자 유입
전 세계적으로도 미술품은 투자 가치는 높지만 폐쇄적 시장구조 탓에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온라인을 통해 소액투자자의 유입이 늘고 있는 추세다.
테파프(유럽아트페어)가 올해 발간한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미술시장 규모는 637억달러(약 71조원)이다. 2016년의 569억달러(약 64조원)에 비해 약 12% 성장했다. 세계미술시장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작품판매와 거래가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온라인 미술품 경매나 여러 작품을 비교·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 형태이지만 미술품 공동구매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예술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기본 개념은 비슷하지만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지난해 설립된 영국의 ‘페럴 호시스’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신진 작가의 작품에 투자해 공동소유하는 후원자를 모집한다. 이탈리아와 미국 기반의 기업 ‘룩 래터럴’은 미술시장의 투명성과 접근성, 유동화를 강조한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온라인 투자플랫폼을 통해 투자자를 모으고, 자산을 토큰이나 코인으로 바꿔 원본데이터 대신 사용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거래를 저장한다. 토큰은 기본자산인 예술작품과 함께 가치가 변동하고, 미술작품을 거래하기 위해 토큰을 교환한다.
특히 이들 신생 업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예술이 아닌 금융 분야 출신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글로벌 미술전문매체 아트페이퍼는 최근 보도를 통해 이같이 전하며 “금융·기술업체들이 미술품에서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찾으면서 자산 토큰화, 소유권 분할, 헤징(위험상쇄), 파생상품 등 금융계에서 통용되던 용어가 미술시장을 휩쓸고 있다”고 설명했다.
K옥션 제공 |
◆경기 민감한 미술품 투자, 기다림 감내해야
사실 미술품 공동구매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소유권 분할이 어렵고 이용자의 참여가 저조해 ‘스플릿아트’ 등의 초창기 미술품 공동구매 업체는 대부분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10여년 전 여러 증권사에서 미술품 간접투자 상품인 아트펀드를 잇달아 내놨지만 글로벌 미술시장의 침체와 함께 처참한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투자상품으로서의 미술품은 희소하기 때문에 인기 작품의 경우 꾸준히 가격이 상승하지만 경기에도 민감한 특징이 있다. 거래도 매우 드물게 일어나 판매를 통해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짧게 수년 이상의 기다림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보관과 유지비용, 다른 상품과 비교해 높은 거래 비용은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요소다.
특히 이제 막 국내에 등장하기 시작한 미술품 공동구매는 정식 투자상품이 아닌 미술품 소유와 공유 모델이다. 미술품 투자가 목적일 때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술품 공동구매는 미술품을 소유하고 싶은 개인 투자자에게 문턱을 낮추고 미술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면서도 “앞으로 법적으로 소유권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지, 작품 판매·대여 등과 관련해 공동소유자들의 이견이 있을 때 의사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의 주체는 누가 될지 모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