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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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왜 국제 사회 '외톨이'로 전락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행사에서 ‘외톨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는 경쟁하듯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노선을 성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70여개국 정상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 다른 나라 정상과 거의 교류하지 않은 채 숙소인 미국 대사관저에 머물다가 11일(현지시간) 귀국 길에 올랐다.

미국 언론과 국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트럼프 대통령처럼 미국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고립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AP통신 등 미국 언론은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니라 ‘아메리카 얼론’(America Alone)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파리 방문에서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의 표적’인 동시에 ‘관심의 초점’이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세계의 많은 지도자가 1차 세계대전 기념행사에서 트럼프의 민족주의를 공격했지만, 서구 정치 질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구자가 지녀야 할 영향력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비난하면서도 영국,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 유럽 국가에서 ‘트럼피즘’을 모델로 한 민족주의 물결이 기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고 NYT가 지적했다.

한때 각별한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서로 등을 돌렸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때리기’의 선봉에 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념식 연설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는 애국심의 정반대”라며 “낡은 망령이 혼돈과 죽음의 씨앗을 뿌리려고 되살아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나는 민족주의자”라고 선언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에서 앙겔라 메르켈(왼쪽 2번째)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가운데)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추모식에서 함께 서 있다. 신화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파리평화포럼 연설에서 “1차대전은 고립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우리에게 보여준다”면서 “편협한 국가주의자의 관점이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무역 정책을 둘러싼 긴장 고조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선문에서 열린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만 참석한 뒤 포럼에는 불참했다. 정상들은 이날 같은 차를 타고 함께 행사장으로 갔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각각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는 파리 근교의 쉬렌 군사묘지를 방문, 1차대전 당시 미군 전몰장병을 추모한 뒤 귀국길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아시아에서 잇따라 열리는 주요 회의에도 모두 불참하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대신 보낸다.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ASEAN)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모두 펜스 부통령이 참석한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