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크림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한 최초의 나라가 나왔다. 지난 7일 미국 매체 타임지는 팔라우 정부가 2020년부터 국내에서 화학적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한다고 전했다.
태평양 군도에 위치한 팔라우는 수백 가지 물고기와 아름다운 산호초로 유명한 휴양지다. 세계적인 다이빙 명소로 각광받는 이 섬나라엔 매년 7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아직도 자신이 ‘지상 천국’에 무엇을 두고 떠나는지 잘 모른다.
‘옥시벤존. 옥티노세이트. 옥토크릴렌…’ 당신도 이런 화학물질을 바다에 흘려 보내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는 바로 우리가 흔히 쓰는 선크림에 들어있는 성분이다. 산호초를 말라 죽이는 ‘백화 현상’의 주범이기도 하다.
타임지는 매년 약 14,000 톤의 자외선 차단제가 전 세계 바다에 뿌려진다는 보고를 내놨다. 안일한 축적이 해양 생태계 교란, 심각한 해일 피해, 기후 변화 가속화와 같은 재앙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거대한 위협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될 수 있다. 누군가 책상 위 ‘핵단추’를 자랑할 때, 우리는 방구석 서랍 아래와 편의점 선반에서 ‘친밀한 공포’를 찾아보자.
1. 아보카도
아보카도 팬들에게 매우 슬픈 소식이 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아침식사 재료가, 당신의 가정 경제 악화시킬 뿐 아니라 지구촌의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자원 관리 국제 협의체 ‘물 발자국 네트워크’는 세계적인 아보카도 열풍이 가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아보카도 한 알이 제대로 영그는 데까지는 272리터의 물이 필요하다. 때문에 아보카도 농장이 많은 지역에선 사막화의 징조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2011년 칠레 수자원 공사는 아보카도 농장의 불법적인 물 사용 사건을 65건 이상 적발했고, 이는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이상 가뭄 증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2. 샴푸
팜유가 발명된 이후, 인류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과자, 라면, 초콜릿, 아이스크림에도 이 마법의 오일이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가 잃은 것도 만만치 않다. 팜유는 기름야자 열매의 과육을 쪄서 압축 채유되는 식물성 유지이다. 우리는 이 기름을 얻고자 넓은 숲과 밀림을 파괴했다.
2018년 세계 자연기금 WWF는 한 보고서를 통해 ‘팜유를 얻기 위해 엄청난 양의 나무가 잘려나가 침팬지와 같은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팜유가 화장품에도 들어간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샴푸와 립스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이 침팬지의 집을 파괴한 대가라는 사실을 광고하는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3. 파인애플
달콤하고 상큼한 맛으로 사랑받는 과일이 고향에서는 씁쓸한 맛의 상징이 됐다.
파인애플의 세계적인 생산지로 알려진 코스타리카는 상품 재배를 위해 수천 핵타르의 숲을 개간하고 있다. 코스타리카 보존 협회는 유구한 역자를 지닌 숲들이 하룻밤 새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있다며 이는 국가와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인애플은 재배 과정에서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과일로 꼽힌다. 코스타리카 국립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코스타리카 파인애플 농장에서 사용된 살충제는 식수를 오염시킨 것은 물론 물고기를 죽이고, 농부들의 건강을 위협한 것으로 나타났다.
4. 피임약
피임약은 인구 수를 조절해 자원의 남용과 파괴를 예방한다. 그러나 누군가 생각 없이 하수도에 약을 버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2017년 영국 엑시터대학의 찰스 타일러 교수 연구팀은 영국 50개 지역에 사는 민물고기의 습성을 분석한 결과 수컷 20%가 암컷화된 특성을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수컷의 암컷화를 발생시킨 원인으로 하수처리시스템에서 강이나 바다로 무단투기되는 피임약과 항우울제의 영향이라고 밝혔다.
스웨덴의 룬드 대학 연구팀도 도심 근처 물고기들에게서 ‘EE2 호르몬’이 흔히 발견되는 사실을 경고했다. 피임약에 흔히 쓰이는 이 합성 에스트로겐 성분은 생태계를 심각하게 교란시키고 있다.
5. 공기 탈취제
한국인들은 미세먼지의 공포를 떠안고 산다. 흐린 날엔 많은 이들이 창문을 꽁꽁 닫고 퀴퀴한 냄새를 가리기 위해 탈취제를 뿌린다. 적어도 미세먼지보다는 안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혹시 그 탈취제에서 레몬향이 난다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영국 왕립 의사협회는 2016년 한 보고서를 통해 공기 탈취제와 같은 일상 생활용품의 사용을 엄격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좋은 향기를 위해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탈취제가 건강에 위협적일 수 있다면서 특히 감귤류 냄새를 풍기는 리모넨 (limonene) 등을 지목했다. 약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로 알려졌지만 특정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BBC의 건강프로그램 ‘아임 닥터 쇼’는 직접 실험을 통해 리모넨은 공기 중 오존과 반응해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발암 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고 밝혀냈다.
이아란 기자 aranciata@segye.com
사진 = bbc,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