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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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취업난에 화병·우울증… 아프니까 청춘? 진짜 아프다!

청년들 정신건강 ‘빨간불’ / 20대 우울증 환자 2017년 7만5600명 / 5년 새 58% 급증… 화병도 두 배 껑충 / 他 연령대 감소 불구 1020만 증가 / 취준생 15% “극단 선택까지 고민” / 고령 국한 정부 지원 우울증 검사 / 복지부 “2019년부터 20∼30대로 확대“
취업준비생 이모(29)씨는 지난 주말 고교동창을 우연히 본 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지 고심 중이다. 멀찌감치에서 동창을 목격한 이씨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반가움보다 불편함이 앞섰던 탓이다. 이씨는 “지금 처지를 동창에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며 “그때 일만 생각하면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져 괴롭다”고 호소했다.

최악의 취업대란 속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된 것으로 모자라 정신건강에도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다.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세대를 위한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18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대에서 우울증, 화병, 공황장애 등 증가율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2013년 4만7721명이던 20대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7만5602명으로 5년 만에 58.4% 늘었다. 전체 연령대의 평균 증가율(16.5%)의 3.5배나 된다. ‘1년 동안 2주일 이상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비율’을 뜻하는 우울감 경험률은 2015년 20대(14.9%)가 50대(13.1%)를 처음 앞질렀다.

화병이나 공황장애를 앓는 20대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 20대 화병 환자와 공황장애 환자는 각각 1449명, 1만6041명으로 5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화병의 경우 다른 연령대는 감소 추세인 반면 유독 20대와 10대만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 세대가 고민하고 있는 취업이나 학업 관련 등의 스트레스가 간단치 않다는 뜻이다.

20대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원인으로 극심한 취업난이 첫손에 꼽힌다. 정희연 서울대 보라매병원 교수 연구팀이 지난 5월 발표한 조사결과를 보면 취업준비생 7명 중 1명(15.3%)이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 조사 대상자의 39.5%는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 연구팀은 “취업준비생의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시급하다”며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신건강 서비스와 사회적 지지의 확대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청년층 물가상승률과 청년체감실업률을 더한 지표인 ‘청년경제고통지수’는 증가 추세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청년경제고통지수는 2016년 22.3%에서 지난해 24.9%로 2.6%포인트 상승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사자들이 정작 도움을 요청할 곳은 마땅치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우울증 치료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20∼30대의 정신건강이 다른 연령보다 나을 것이란 막연한 선입관 탓이 크다.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20대 중에서 “우울할 때 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다”고 답한 이가 2016년 기준 전체의 8.2%였다. 현재 정부가 지원하는 우울증 검사는 40대 이상부터 받을 수 있고,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나 이를 20∼30대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과거 청년세대에 비해 지금 청년세대가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우울감을 호소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정부와 사회가 청년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