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한제국 시기 미술은 일제강점기의 시작으로 여겨져 연구와 전시에서 소외된 측면이 컸다. 하지만 이 시기는 새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강해지며, 나아가 난세를 극복하려는 황실의 시도와 그 변화상이 미술에 역동적으로 담긴 때이기도 하다.
황제의 어진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황색 용포와 의장물이 등장한 고종의 어진. 20세기 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김규진, 변관식, 안중식, 채용신 등 대한제국 시기 대표작가 36명의 회화, 사진, 자수, 도자, 금속 공예 등 총 200여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으며, ‘대한황제 초상사진’, ‘곽분양행락도’, ‘자수매화병풍’ 등 해외 소장 작품들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1부 ‘제국의 미술’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발생한 미술의 변화를 살핀다.
황실의 번영 기원 화려한 채색과 금박을 사용한 ‘해학반도도’. 1902년 추정,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 중인 ‘해학반도도’는 전통 조선 회화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채색과 금박을 사용했다. 금분으로 쓰인 제발에서 임인년(1902년) 여름, 황실에 바쳐진 그림임을 알 수 있는데, 대한제국과 황실의 번영을 바라는 의미로 금박을 전면에 활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호법신이 된 대한제국군 대한제국 군인이 호법신으로 등장한 신중도. 1907년, 신원사 소장. |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은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 관련 사진으로 채워진다. 1880년대 초 서울 종로(당시 대안동)에 최초의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 어진이나 기록화 같은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을 사진이 대체하게 됐다. 이는 사진이 극사실성을 추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법으로서 회화를 보완, 혹은 대체하는 차원으로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상황임을 보여주는 육군 대장복 차림의 ‘순종황제’, 김규진의 첫 고종 사진 ‘대한황제 초상사진’ 등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는 고종, 순종시기 각종 공예품의 양상과 변화를 조명한다.
파리 만국박람회에 등장한 한국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한국관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알린 프랑스 ‘르 프티 저널’. 1900년, 이돈수 소장 |
마지막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에서는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인 성격의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을 조명한다.
조선시대 궁중 화가들은 그림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고종, 순종시기 도화서가 해체되면서 궁중회화 제작에 다양한 외부 화가들이 프로젝트 형식으로 참여하게 됐고, 이들은 전문 예술인 대우를 받았다. 이 시기에는 궁중회화임에도 화가가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남긴 작품들이 제작됐다.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채용신의 ‘벌목도’와 ‘최익현 유배도’,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해강 김규진의 ‘묵죽도’ 등에서 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때 화가들은 궁중회화를 제작하며 실력을 가다듬고 명성을 쌓았는데, 그 대표적 인물인 안중식, 조석진, 김규진이 ‘서화미술회’와 ‘서화연구회’를 세웠다. 그곳에서 양성된 화가들이 이후 근대 한국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대한제국이 한국 근대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보여준 궁중미술은 이 시기 미술이 쇠퇴기의 산물이 아닌 변화를 모색했던 치열한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며 “이번 전시는 대한제국 시기가 어떻게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를 마련했는지 살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종을 연기한 배우 이승준이 가이드 투어를 통해 관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한다. 이승준의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6일까지 계속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