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근무하는 A씨는 지난달 상위기관에서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틀 만에 배정된 숫자만큼 단기 일자리를 짜내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지시 메일에 ‘BH 관련’이라고 써 있는 데다 향후 기관 평가에 고려한다니 외면할 수도 없었다. ‘청와대’와 관련 업무라서 거부했다간 호되게 당할게 뻔히 보였다. 결국 A씨는 급한 대로 서류 정리, 영수증 취합 등의 업무에 1~2명씩 배정하는 것으로 구색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내가 만들고도 이런 사소한 일에 1명이나 있어야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구직자는 물론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되겠냐”고 털어놨다.
기재부가 지난달 24일 내놓은 단기고용대책을 뜯어보면 과연 필요성이 있고 시급한지 의문스러운 일자리 투성이다. 국립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불을 끄는 일을 하는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 1000명,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라텍스에 라돈을 측정해주는 라돈 측정 도우미 1000명 등을 고용하는 식이다.
억지로 단기 일자리를 ‘창조’해야하는 공공기관들은 채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눈치보기 작전을 펼치고도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고 단기일자리 관련 예산이 책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돈다”며 “버티다 보면 안하고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라서, 발 빠르게 정책을 시행한 기관에서는 ‘어디는 하고 어디는 안하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이런식으로 일자리를 늘일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며 “전 정권조차 시도하지 못한 진정한 ‘창조경제’”라며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단기 일자리는 단순 통계지표만 나아 보이게 만들 뿐 고용상황 개선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강제상 경희대 교수(행정학)는 “단기 일자리는 보통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노하우를 얻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며 “이번 정부의 단기 일자리 창출은 조직과 구직자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평가했다.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도 “20세기 국민 전체를 취업시켜준다던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국가 주도 일자리 창출의 실패는 증명된 것”이라며 “정부가 생산성 없이 그저 월급만 주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