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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까지 단기 일자리 30개 제출"…'통계주도성장' 논란 [뉴스+]

靑 ‘하명 채용’에 괴로운 공공기관 / 단기 일자리 ‘보여주기식 고용’에 불만 표출 / 상급기관 지시메일에 ‘BH 관련’ / 공공 일자리 5만9000개 맞추려 업무 정하지도 않고 “일단 뽑자” / “통계 수치 포장 급급” 비판 제기 /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도 모순 / 전문가 “장기적으로 경제 악영향”
“모레까지 단기일자리 30개를 만들어서 제출하세요”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A씨는 지난달 상위기관에서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틀 만에 배정된 숫자만큼 단기 일자리를 짜내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지시 메일에 ‘BH 관련’이라고 써 있는 데다 향후 기관 평가에 고려한다니 외면할 수도 없었다. ‘청와대’와 관련 업무라서 거부했다간 호되게 당할게 뻔히 보였다. 결국 A씨는 급한 대로 서류 정리, 영수증 취합 등의 업무에 1~2명씩 배정하는 것으로 구색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내가 만들고도 이런 사소한 일에 1명이나 있어야 할까 의구심이 들었다”면서 “구직자는 물론 우리 조직에 도움이 되겠냐”고 털어놨다.

1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공공부문에 맞춤형 일자리가 5만9000개 만들어질 예정이다.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등에서 청년과 노년을 대상으로 2~3개월짜리 단기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한파를 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일자리 창출 지시를 받은 일선 공공기관에선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있다. 조직에 필요한 ‘맞춤형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니라 보여주기식의 ‘끼워맞춤형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일각에서는 통계상 고용 숫자를 늘려 마치 고용상황이 좋아진 것처럼 포장하는 ‘통계주도성장’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기재부가 지난달 24일 내놓은 단기고용대책을 뜯어보면 과연 필요성이 있고 시급한지 의문스러운 일자리 투성이다. 국립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불을 끄는 일을 하는 국립대 에너지 절약 도우미 1000명,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라텍스에 라돈을 측정해주는 라돈 측정 도우미 1000명 등을 고용하는 식이다.

실제 단기 일자리 채용을 진행 중인 기관들은 업무분장도 제대로 하지않은 채 우선 사람부터 뽑고 있다. 나라일터에서 단기 일자리 채용 공고를 낸 것으로 확인되는 기관 116곳 중 대부분은 계도활동, 서무보조, 시설물관리, 기타업무 등 모호하고 목적성도 불분명한 업무를 담당직무로 소개하고 있다. 단기 일자리로 10명을 채용 중인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일단 배정받은 수가 있기 때문에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며 “최종 합격자들에게 어떤 일을 시킬지는 출근한 이후에 생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억지로 단기 일자리를 ‘창조’해야하는 공공기관들은 채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눈치보기 작전을 펼치고도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질타를 받고 단기일자리 관련 예산이 책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돈다”며 “버티다 보면 안하고 넘어갈 것 같은 분위기라서, 발 빠르게 정책을 시행한 기관에서는 ‘어디는 하고 어디는 안하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이런식으로 일자리를 늘일 수 있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며 “전 정권조차 시도하지 못한 진정한 ‘창조경제’”라며 꼬집었다.

단기 일자리 창출이 현 정권의 노동정책인 ‘비정규직 제로화’와도 모순된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계약직보다도 질이 낮은 단기 일자리 양산하겠다는 발상은 정부의 고용안정성 강화와 노동조건 개선 기조를 역행하는 꼴이란 것이다. 현장에서는 정권 초기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방향으로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계약직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추진하고 있었는 데 갑자기 ‘초단기 계약직’을 숫자까지 정해 할당하고 채용하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단기 일자리는 단순 통계지표만 나아 보이게 만들 뿐 고용상황 개선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강제상 경희대 교수(행정학)는 “단기 일자리는 보통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노하우를 얻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며 “이번 정부의 단기 일자리 창출은 조직과 구직자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평가했다.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도 “20세기 국민 전체를 취업시켜준다던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국가 주도 일자리 창출의 실패는 증명된 것”이라며 “정부가 생산성 없이 그저 월급만 주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고 비판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