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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인정, 경쟁”…일베는 왜 ‘여친인증’ 나체사진 올리나

[이슈톡톡] 전문가 분석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즉 일베에 ‘전 여친(여자친구) 인증’이란 제목의 글과 여성의 사진이 올라와 20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일베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고 본격 내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베 회원들은 전날 새벽부터 자신의 전 여자친구를 인증한다며 여성의 나체사진, 성관계 사진, 여성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 등을 올리기 시작했다. 다수 회원이 나서 여성의 신체 사진을 올려 파장은 커졌고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 20일 오후 기준 12만명이 넘는 공감을 받았다.

이들은 왜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사진을 회원들과 공유하고 나선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별의 분노, 남성의 경쟁심리, 관심받기 위한 일베의 구조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지난 19일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에 올라온 ‘전 여친 인증’ 사진. 사이트 캡처

◆헤어진 여자친구에 대한 분노 “이별범죄의 한 유형”

범죄 전문가들은 일베 회원들이 헤어진 여자친구의 나체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이별범죄’의 한 유형이라고 진단한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20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일베 회원의 전 여친 인증은) 이별범죄 측면이 강하다”며 “앙심을 갖고 해코지하려는 의지가 분명하다”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상대의 동의를 받아 나체 영상이나 사진을 찍는 것은 요즘 분위기상 어쩔 수 없어 보인다”면서 “하지만 유포는 다른 차원이다. 유포죄에 대한 처벌이 현재 솜방망이 수준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공정식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도 이날 통화에서 “이별 범죄라고 하는 건 감정으로 인한 범죄”라며 “연인과 관계는 더욱 강한 유대감을 갖는데 그만큼 이별이 오게 되면 심각한 관계 즉 극단적인 형태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이어 “이는 여자친구 망신을 준다거나 명예를 훼손시키는 감정 표출로 나타나곤 한다”며 “(사진을 공유하는) 행동을 통해 상대에 대한 위협, 떠난 것에 대한 보복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전 여자친구 사진 공유”

남성 위주의 커뮤니티에서 ‘여자친구 사진 인증’은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여진 활동가는 이번 사태에 대해 “비슷한 범죄들을 살펴보면 같은 남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능욕하고 자극적인 것을 올리면 그 문화 안에서 칭송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진 활동가는 과거 음란사이트로 논란이 된 ‘소라넷’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라넷에서 여성사진을 올리는 사진은 ‘작품’이라 불렸고 이런 사진을 올리는 게시자를 ‘작가’라고 불렀다”며 “소라넷은 사라졌지만 남성성을 과시하는 문화는 남아 일베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특히 가까운 사람에 피해를 본 경우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게 된다. 저 사람이 나를 찍을까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에 여성의 생활자체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심각성을 알렸다. 여진 활동가는 “본인이 사진의 사진이 올라간 경우엔 유포피해와 마찬가지로 경찰에 신고하고 삭제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며 “유포자는 나체가 노출됐을 땐 음란물유포죄, 얼굴이 노출됐을 땐 명예훼손죄,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위노출 주목 경쟁이 한 원인”

관심을 받으면 게시판 상위에 노출되는 일베 커뮤니티의 특징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주목경쟁’이 회원들에게 자극적인 콘텐츠를 유도했고 헤어진 여자친구 나체사진을 올리는 범죄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논란이 된 ‘전 여친 인증’ 게시물 상당수에는 “일베인증”, “이런게 일베지” 등 추천하는 댓글들이 줄이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는 통화에서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주목받게 되면 일간베스트에 올라가고 추천을 받게 되면 명예의 전당까지 올라간다”며 “일베에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일 경우에 더 많은 추천을 받게 되니까 주목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일베는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익명의 공간이기 때문에 위학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