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다이티산 국립공원에 오른다. 국립공원이라고 하지만 케이블카가 산 중턱까지 이어져 있어 티라나 전경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다이티산은 해발 1613m로 알바니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티라나 시내에서 버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지역주민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왕복 8유로를 지불하면 20분 만에 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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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다이티산 국립공원은 케이블카가 산 중턱까지 이어져 있어 티라나 전경을 쉽게 감상할 수 있다. |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소나무, 참나무, 너도밤나무 숲 위로 케이블카가 이동한다. 뒤를 돌아보니 티라나 시내가 점점 멀어지면서 한눈에 들어온다. 산 정상 케이블카 승강장 주변에도 차들이 많이 주차돼 있다. 차량을 이용할 수도 있고, 하이킹 코스를 통해 걸어 올라와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여유로운 숲길 산책의 정취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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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어로 ‘샘’을 뜻하는 도시 크루야는 티라나에서 32㎞ 떨어진 알바니아 중북부에 있는 도시다. |
정상에서 바라보는 티라나는 도심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케이블카장 주변으로는 다양한 야외활동 시설이 들어서 있다. 여러 사람이 승마를 즐기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말타기뿐만 아니라 활쏘기 등 다양한 액티비티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도시와 가깝긴 하지만 고지대라 날씨 변화가 심하고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잔디밭에 앉아 티라나 풍경과 함께 승마하는 사람들을 구경했지만 차가워진 바람을 느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알바니아어로 ‘샘’을 뜻하는 도시 크루야(Kruja)로 향했다.
크루야는 티라나에서 32㎞ 떨어진 알바니아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티라나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있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다. 크루야는 1190년 알바니아인이 세운 최초 민족 국가 아르버르 공국(1190∼1255년) 수도다. 15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에 정복됐지만 1443년부터 1468년까지는 스칸데르베그 세력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도시는 산비탈을 따라 형성돼 있고 오래된 성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먼저 복원된 크루야성을 방문하고 성 안에 위치한 스칸데르베그 박물관에서 가이드 투어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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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야성을 돌아보며 만난 현지인들. 크루야성은 요새의 이미지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전원도시 같은 분위기다. |
15세기 크루야는 오스만에 완강히 저항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국가적 영웅인 스칸데르베그가 이곳을 거점으로 25년간 오스만에 저항활동을 벌였다. 스칸데르베그와 알바니아의 영웅들이 박물관에 기록돼 있어,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알바니아 학생들도 역사학습을 위해 단체로 방문하는 곳이다.
성벽 건설은 서기 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성벽 안쪽에 자리한 박물관은 1981년에 설립됐다고 한다. 성을 향해 오르는 길은 굵은 자갈로 이뤄져 있다. 거친 자갈들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닳고 닳았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역사는 치열하게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듯했다. 알바니아는 여전히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현대사를 보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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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야는 붉은 지붕의 아담한 집들이 계곡을 따라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산비탈을 따라 형성돼 있고 오래된 성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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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야성을 안내하는 가이드. |
성 안으로는 오래된 집들이 복원돼 있다. 붉은 지붕의 아담한 집들이 계곡을 따라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성 위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거칠었던 역사가 만들어낸 요새의 이미지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전원도시 같은 느낌이다.
성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옛 모습으로 복원된 시장, 바자르를 들렀다. 전통 시장에는 수놓은 물건들, 카펫, 은장신구들, 전통 옷, 골동품 등과 같은 알바니아 공예품들이 진열돼 있다. 관광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구경거리이다.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다음 목적지인 베라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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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야성 아래 옛 모습으로 복원된 시장, 바자르. 전통 시장에는 수놓은 물건들, 카펫, 은장신구들, 전통 옷, 골동품 등과 같은 알바니아 공예품들이 진열돼 있다. |
티라나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베라트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 도시로 다양한 문화, 건축, 예술, 종교적 특징이 있다. 유네스코 보호 아래 도시 자체가 동서양,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알바니아를 다녀간 많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베라트를 꼽는다고 한다. 도시는 기원전 6∼5세기에 일리아 정착지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 이후 기원전 3세기 안티푸카로 알려진 성으로 바뀌었다. 그 후 성은 확장됐고, 특히 무자카즈 가문의 봉건 통치 기간 동안 더욱 확장됐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벽 안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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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나에서 남쪽으로 120㎞ 떨어진 베라트는 2000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 도시로 다양한 문화, 건축, 예술, 종교적 특징이 있다. |
성 아래 ‘망갈레미’ 지역에는 가파른 언덕을 따라 지어진 집들이 이어져 있다. 2층은 눈에 띄게 많은 창과 나무 조각들이 있다. 오래된 가옥은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을 향해 네모난 창을 내고 있다. 이 이유로 베라트는 떠다니는 창문의 도시 또는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도 불린다. 작은 산을 휘돌아 나가는 형태의 강과 작은 물방울 모양의 수많은 창이 어우러진 모습이 계곡을 이루는 듯하다.
오섬강 건너의 ‘고리카’ 지역은 망갈레미의 집들과 마주하고 있다. 1780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가 고리카와 망갈레미를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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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트 ‘망갈레미’ 지역에는 가파른 언덕을 따라 지어진 집들이 이어져 있다. 오래된 가옥은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강을 향해 네모난 창을 내고 있다. 이 이유로 베라트는 떠다니는 창문의 도시 또는 1000개의 창문을 가진 도시로도 불린다. |
호텔이 있는 망갈레미 지역에서 멋진 다리를 건너 고리카에 있는 수도원을 방문했다. 수도원으로 가는 구시가지는 돌로 된 벽과 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그 자체로 중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1417년 오스만 사람들이 베라트를 점령했고, 베라트성의 교회들은 이슬람 회당으로 이용되면서 두 문명과 종교가 모두 하나의 교회 안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 문명의 유명 예술가들의 회화와 조각이 수도원을 비롯해 도시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이 도시가 ‘박물관 도시’로 선포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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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트는 유네스코 보호 아래 도시 자체가 동서양,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이루는 도시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
저물어가는 석양빛을 따라 강 건너 저 멀리 눈 덮인 성스러운 산(Tomorr)의 정상이 물들어 간다. 숙연한 마음으로 노을을 바라보다 다시 구시가지에서 내려와 역사와 전통의 문화만큼 유명한 베라트 전통 음식을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