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미국의 일본 미쓰비시 수사 의미 제대로 읽어야

미국 검찰이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 UFJ 파이낸셜 그룹(MUFG)’을 북한 관련 자금 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MUFG는 대북 제재 대상인 회사 및 개인과 거래를 차단하는 내부 전산시스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금융거래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MUFG는 자산 규모 286조엔에 이르는 세계 5위의 은행이다. MUFG 측은 보도에 대해 “답변을 보류하겠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이번 일은 동맹국 금융회사라도 대북 제재 위반에 해당하면 가차없이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경고성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금융제재 위력은 엄청나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망에서 퇴출될 뿐만 아니라 파산까지 각오해야 한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미국이 북한과 거래한 마카오의 BDA를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자 전 세계 금융기관은 BDA와 거래를 끊었다. 신뢰도가 추락한 BDA는 이후 사실상 파산했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대북 제재에 가장 협조적인 일본의 최대 금융사에도 칼을 빼드는 판이니 우리라고 예외일 리 없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 국내 7개 은행과 콘퍼런스콜(전화회의)을 열어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북한을 방문한 삼성·현대차·SK·LG 등 국내 4대 기업을 직접 접촉해 남북협력사업 추진 현황을 파악했다. 대북 제재 이행과 관련해 국내 은행과 기업들의 주의를 환기한 것이다. 정부에 등 떠밀려 남북 경제협력사업에 나섰다가 대북 제재 위반으로 미국으로부터 된서리를 맞는다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정부는 21일 북한 산림병해충 방제 등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41억여원을 지원키로 의결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도 추진하고 있다. 남북협력사업이 계속된다면 돈과 물자가 북한에 대량으로 흘러들 수 있는 여지는 크다. 당장 산림병해충 방제 화학약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수 있어 대북 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앞으로 위반 경계선을 넘나드는 사례가 속출할 것도 빤하다. 정부는 미국과 사전 조율에 만전을 기해 혹여라도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MUFG 조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