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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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건축 정보 공유… 토지 활용 효율성 제고” [차 한잔 나누며]

조성현 스페이스워크 대표 / 자동화프로그램 ‘랜드북’으로 문체부 ‘올해의 젊은건축가상’ / 필지 정보·법규 부합 설계 등 제시 / 노후도·안전 체크 버전 무료 공개 / 한국, 수준 낮은 건물 여전히 많아 / 기술로 도시 미적감각 높이고파
“인류에 한정된 자원인 토지를 더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스타트업 기업이 입주해 있는 공유 사무실에서 만난 조성현 스페이스워크 대표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서울대 건축학과 03학번 동기인 문주호·임지환 건축가와 공동 대표로 있는 경계없는작업실건축사사무소에서 한 작업으로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소수가 알고 있는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건축의 저변이 확대되는 새로운 접근방식을 높이 평가한다”, “데이터 기반의 자동화프로그램(랜드북·www.landbook.net)으로 건물을 짓기 위한 정보를 다수가 공유하는 방법론이 인상적”이라고 호평했다. 조 대표는 바로 이 자동화 프로그램을 심화시키기 위해 지난 8월 경계없는작업실에서 기술팀을 분사해 스페이스워크를 세웠다.

조성현 스페이스워크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자신이 개발한 건축 자동화프로그램 ‘랜드북’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조 대표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설립한 설계사무소 경계없는작업실의 프로젝트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젊은 건축가’ 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상윤 기자
그는 “우리나라에 있는 3800만개 필지(땅)는 각기 다른 법의 적용을 받는다”며 “건축을 통제하는 법만 23가지이고 1년에 6번씩 바뀐다. 다양한 변수에 사람이 모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기술을 이용해 효과적인 길을 찾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랜드북은 주소를 입력하면 해당 필지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고, 건축법규 내에서 허용하는 면적과 높이의 건물의 기본 설계를 구현해준다. 기존 건축가들이 터부시했던 임대수익률 등의 자료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제시한다.

조 대표가 속한 경계없는작업실은 지난 4년간 20채의 건물을 지었다. 검토한 프로젝트는 300여개에 달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왜 이렇게 큰 상을 줬는지 의문이 들 법하다. 하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심사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 대표는 랜드북을 사회를 위해 무료로 공개했다. 기업이나 건축주에게 특화된 버전 외에는 앞으로도 계속 무료로 서비스할 계획이다. 그는 “건축은 한 프로젝트에 최소 1∼2년이 걸린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가 어려운 구조”라며 “빠른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건축으로 혜택을 주기 위해서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서울 용산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 50년 된 노후 벽돌 건물이 붕괴됐다. 이를 본 조 대표는 ‘랜드북 세이프티’ 버전을 만들어 무료로 공개했다. 건물의 노후도와 건축구조, 주변의 신축 공사 현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비스다. 그는 “건물의 세입자나 인근 주민들은 해당 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를 수 있다”며 “노후 건물 인근 공사 정보를 한 번에 보면 미리 위험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구청은 이 서비스를 구청 업무에 접목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노후건물의 붕괴 위험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최근 발생한 관수동 고시원 화재와 관련해 위험한 건물을 찾아내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는 “건축법규에는 패턴이 있어서 특정 시기 이후부터는 내진 설계, 화재방지 대책, 피난 규정이 달라진다”며 “이를 활용해 피난 규정이 열악했던 시기를 찾고, 건물의 준공 연도를 대입해 고시원으로 허가 난 주소 데이터를 접목하면 화재 발생 시 피난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더 위험한 고시원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처럼 기술을 통해 도시의 평균적 미적 감각을 높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요즘 해외 유명 건축가의 건물이 늘어나면서 상위권 건물의 수준은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평균 이하의 건축비가 드는 건물은 같은 도면을 복사하듯 찍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전망이 뻔히 트인 방향이 있는데도 거실이 옆 건물 벽을 바라보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며 “조금만 신경 쓰면 막을 수 있는 일인데 저렴한 공사비와 짧은 공기를 맞추려다 보니 빚어진 촌극”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활동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함께 베트남의 취약계층 주거사업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그는 “한국이 30년 전에 겪은 도시화의 어려움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 베트남은 사회주택이라는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을 많이 짓고 있는데 공공기금이 고갈된 상태”라며 “민간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우리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술로 사업성 검토를 쉽게 하는 일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건축가 조 대표는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늦어도 5년 안에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는 1층 공간을 잡아먹고 있는 주차장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대표는 “주차장으로 가득 찬 골목이 없어지면 지금의 삭막한 풍경도 바뀌고 새로운 활용도 늘어날 것”이라며 “1층들이 색깔을 가지고 사람에게 더 친숙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 같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