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의 작은 창고에서 촬영을 시작한 이 광고는 지난 15년간 만들어진 유명 광고제 수상작으로부터 추출된 정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수많은 광고 중에서 사람과 자동차, 그리고 자동차를 사용할 때 갖게 되는 감정이나 행동 등과 관계된 정보를 추출해 데이터 셋으로 만든 후, IBM의 AI 컴퓨터 시스템인 왓슨(Watson)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해 광고 대본을 만든 것이다.
정동훈 광운대 교수 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 |
그러나 단순하게 빅데이터 분석만 한 것은 아니다. 이 광고의 제작 콘셉트를 ‘직관’으로 잡았는데, 이를 광고에 녹아내기 위해 매우 어려운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연구진을 꾸렸다. 행복, 슬픔, 분노, 확신과 관련한 키워드를 활용해 직관을 강조한, 심리학에 근거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자 했다. 문제는 AI로 하여금 직관을 강조한 광고를 만들게 하기 위해서 연구팀은 ‘직관’이란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야만 했다. 인간이야 서슴없이 직관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하지만, AI는 직관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광고에 적용한 실험을 통해 그들은 직관이란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무의식적인 감정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고, 왓슨이 직관에 최적화된 광고를 만들 수 있도록 이러한 정보를 모두 적용시켰다. 감정을 이해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통찰력을 끄집어내는 것에 뛰어난 왓슨은 수많은 자료와 학습을 통해서 결국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었고, 미국과 영국 양국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저명한 영화감독은 이 대본으로 광고를 제작했다.
사실 이전에도 AI가 광고 대본을 쓴 경우가 있었다. 지난 9월 말 한 햄버거 프렌차이즈사는 AI가 만든 대본을 바탕으로 만든 광고 시리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고성능 컴퓨터와 빅데이터, 고급 패턴 인식 기술, 인공 신경 네트워크 등을 통해 1000시간 동안 심층기계학습(딥러닝) 알고리즘을 훈련한 결과를 반영한 광고였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대본은 매우 조악해서 정상적인 광고로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낮았다. 수천 편의 패스트푸드 광고와 업계 보고서를 분석해 AI 시스템에 반영시켰지만, 단순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준으로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호소할 수 있는 광고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AI는 광고 대본뿐만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소설, 시집까지 발간했을 정도로 이미 창의적 영역에 진출했다. 시나리오 전문 AI인 벤저민(Benjamin)은 TV 시리즈인 ‘스타트렉’과 ‘엑스 파일’ 등 수십 편의 공상과학 시나리오를 학습하며 첫 번째 시나리오를 작성해 영화로도 제작됐고, 일본에서는 공상과학 소설가를 기리기 위해 만든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 AI가 쓴 작품이 예선을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은 인간의 관점으로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자동차 광고는 인간과 AI가 어떻게 협업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빅데이터를 AI에 쏟아붓는다고 AI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AI가 인간과 같은 감성적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인간화시켜야 한다.
AI가 직관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것처럼, AI가 인간의 관점에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데이터 연구자와 AI 연구자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자·사회과학자와의 협업이 필요하다. AI가 적용될 세상은 인간의 세상이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이를 AI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필요한 이유이다.
정동훈 광운대 교수 인간컴퓨터상호작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