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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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법 알기 어렵지만… 공인중개사 맹신은 금물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36)씨는 지난해 6월 공인중개사의 소개로 영등포구에 위치한 원룸을 전세 보증 임차계약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이씨는 자신이 살던 원룸 건물이 공매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씨는 우선 건물이 공매로 넘어가게 된 경위를 묻기 위해 자신의 계약을 체결한 공인중개사를 찾았지만, 공인중개사는 이미 잠적한 뒤였다.

같은 사정의 다른 입주민과 함께 조사를 해보니 이씨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첫 번째는 임대차 계약 당시 “건물에 근저당이 잡혀 있지만 건물가의 20%도 되지 않는다”는 공인중개사의 설명과 달리 건물가의 80%에 가깝게 근저당이 설정됐던 것.

두 번째는 이 사건의 시작이 건물주가 전세보증금을 빼돌리기 위한 ‘계획사기’였고, 공인중개사는 건물주로부터 월급을 받고 부동산을 중개하는 ‘어용 부동산’이었던 것.

◆공인중개사가 알고 보니 사기꾼의 ‘어용 업체’

최근 월세를 전세로속여 보증금을 가로채거나 입주민들의 전세보증금을 모두 빼돌리는 등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일부 공인중개사가 사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제3자의 위치에서 객관적인 부동산 정보를 알려주고 중개를 해야할 공인중개사가 정보의 우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다면 임차인은 속절없이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다.

이씨의 사례처럼 서울의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부동산중개업체는 건물주가 설립한 유령회사의 직원으로 소속돼 월급을 받으면서 ‘사기 중개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건물주의 지시를 받아 건물의 위험성을 숨기며 임차인을 끌어모으는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범행 수법은 이랬다. 해당 건물의 감정가를 높게 설명하고, 건물의 근저당 액수를 낮게 알려주면서 마치 건물이 안전한 것 처럼 임차인을 속였다.

또 해당 중개사는 건물이 공매에 넘어가도 전세보증금은 우선적으로 보장한다는 신탁회사의 공문을 임차인에게 보여주고, 부동산 중개업체가 서울보증보험으로부터 1억원의 부동산 보험에 가입된 사실을 임차인에게 상기 시켰다.

하지만 중개사가 제시한 신탁회사 공문은 법적 논란이 있는 공문이었고, 1억원의 보증보험은 중개 1건 당 가입된 게 아니라 1년 기간 동안 발생한 모든 부동산 사고의 총 한도액이었다.

예컨대 이같은 피해자가 10명이면 1억원을 10명이서 나누게 된다. 이씨의 경우 피해자가 100여명이라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보상금은 100만원 이하인 셈이다.

이처럼 부동산 중개사고 공제 한도액을 두고 논란이 일자 2012년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부동산 거래 건별 1억원 이상을 보장하는 공제 등에 가입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추진했으나 공인중개사들의 반발로 끝내 무산됐다.

◆월세를 전세로 속여 보증금을 가로챈 공인중개사

공인중개사가 건물주와 공모하는게 아닌 개별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연말 충북 충주에서는 한 공인중개사가 임대 아파트 임대차 중개를 하면서 월세를 전세로 속여 임차인의 보증금을 가로채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가 아닌 월세 임대 계약권만 위임 받았지만, 전세 계약권이 있는 것처럼 임차인을 속여 세입자 등 21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6억원을 가로챈 것이다.

심지어 공인중개사로부터 자격증을 빌려 2011년 9월부터 올해 7월까지 부동산 중개 사무실을 운영하며 월세를 전세로 속여 임차인 14명으로부터 1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40대가 구속되기도 했다.

◆선량한 공인중개사의 사정과 전문가의 제언

일부 그릇된 공인중개사의 범행이 종종 벌어지지만 대다수의 ‘선량한’ 공인중개사도 부동산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는 공인중개사가 접근할 수 있는 부동산의 정보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임대인의 세부적인 상황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예를들어 공인중개사가 중개한 부동산이 임대인의 개인 채무관계로 인해 경매 혹은 공매로 넘어가더라도, 그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 공인중개사가 알기란 어렵다.

행여 임대인의 개인 채무로 부동산이 경·공매로 넘어가게 될 경우 임차인은 정상적인 공인중개사를 통해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부동산 사고에 휘말릴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안전한 부동산 계약을 위해 △공인중개사를 맹신하지 말 것 △객관적인 정보를 충분히 확인한 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것 △등기부등본 상의 실소유주와 만날 것 △계약전 법조인의 상담을 구할 것 등을 주문했다.

서초동의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공인중개사가 모든 객관적인 정보를 알고 있을 거란 보장이 없고, 중개사가 범행의 공범이면 속절없이 사기에 당하게 된다”며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 전 임차인이 여러 공인중개사를 만나 건물의 감정가, 정확한 근저당 액수, 부동산에 묶여있는 전체 보증금의 액수를 모두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해당 부동산의 근저당 액수와 임차인 전체 보증금 액수의 합이 건물 감정가의 70%가 넘어가면 다시 한 번 생각하는게 좋다”고 덧붙였다.

사기 사건을 전문으로 수사한 서초동의 한 검사는 “부동산 전세 사기의 경우 피해금액이 크면서 사회초년생, 어려운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며 “번거롭더라도 중요한 부동산 계약은 꼭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전문 변호사와 상담 후 체결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