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인 A(37)씨는 아버지(70)의 부고를 알리며 참담해 했다. 지난달 21일 A씨의 아버지는 끝내 병상에서 숨을 거뒀다. 2015년 전북 임실의 한 읍내 도로에서 트럭 사고를 당한 후 3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5분 간격으로 지적장애 1급 여동생(28)도 트럭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녀가 늘 손을 잡고 걷던 그 길은 남은 가족에겐 떠올리기 싫은 장소가 됐다.
사고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A씨의 마음은 치유되지 않았다. A씨는 지난달 29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가해자는 아무런 형사처벌 없이 넘어갔다. 너무 억울하다”며 “검찰 측에 아버지 사건을 재조사해달라고 화요일(4일) 진정서를 낼 예정이다. 할 수 있는 것까지 다 해볼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15년 9월21일, 전북 임실군 임실읍 한 장례식장 앞의 읍내와 고속도로 나들목이 연결된 도로. 부녀는 저녁 산책 겸 논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 구간은 트럭 등 차들의 과속이 잦은 곳이었다.
큰아들 A씨를 제외하고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 모두 지적장애가 있다. 지적장애 3급 아버지는 화물운송회사의 허드렛일로 월 100만원씩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다. 지적장애 1급 딸은 나이가 서른이 다 됐지만 상황판단 능력이 미흡했다. 아버지는 그래서 늘 걱정스레 딸을 챙겼다고 한다. 부녀는 예전에 살던 집에 대한 애착이 컸다. 집 근처 작은 논을 바라보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잠시 아버지가 앞장선 순간, 딸이 도로 가운데로 걸어갔다. 한순간이었다. 1t 화물차가 딸을 들이받았다.
운전자가 황급히 내려 쓰러진 딸을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다. 혼자 남겨진 아버지는 사리 분별이 어려웠다. 도로 가운데에 딸의 신발이 떨어져 있었다. 오열하며 딸의 신발을 주우러 갔던 아버지는 뒤이어 오던 다른 트럭에 치이고 말았다.
이날 딸은 즉시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아버지는 해당 사고로 뇌출혈 등 중상을 입었다. 3년간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지난달 21일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부녀가 비슷한 사고를 당했지만 두 가해자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A씨는 “동생 쪽 가해자와는 원만히 합의됐는데, 아버지 쪽 가해자는 사과도 없이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런 처벌 없이 지나가고 사견이 종결됐다. 부조리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A씨와의 일문일답.
―사고 후 합의는 했나?
=“동생 가해자분하고는 합의가 좋게 다 끝났다. 사과 말씀도 하시고 그런 식으로 하셔서. 저희 쪽도 과실이 있으니까 서로서로 좋게 해서 합의보고 그랬다. 그런데 아버지 쪽 (가해자) 같은 경우는 안 좋게 나오더라. 저희 쪽도 과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과도 마지못해 하는 것처럼 하셨고, 유족 입장에서 엄청 기분 나쁘게 하셨다.”
―가해자가 유족에게 어떻게 대했나?
=“처음에는 경찰서에서 형사 합의를 봐야 한다고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병원 소견서를 받고 나서는 안 해도 된다 해서 넘어갔다. 그런데 트럭 기사가 ‘법대로 해라’ ‘배 째라’ 이런 식으로 심한 말을 많이 했다. 여동생이랑 아버지가 그렇게 됐는데... 그 일 이후 따로 연락도 없었다. (아버지 장례식 때) 오지도 않았고. 아마 돌아가신지도 모를 거다.”
―처벌은 받았나?
=“그때는 아무런 형사처벌도 받지 않았고 그냥 넘어갔다. 경찰 조사관분께 통화를 했는데 그게 검찰로 송치가 돼서 1차 사건 종결이 되었다고 한다. 저희도 방법을 찾다 찾다 해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는 것이다). 저희 입장에선 억울하지 않냐. 그래서 검찰 측에 진정서를 내서 재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사고 전 아버지 건강은 어땠나?
=“그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지병 같은 거 전혀 없었으니 일도 하셨었고 (아마 건강하셨을 거다). 어머니는 농사일은 연세가 있어서 못하시고 전북 임실에서 아버지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셨다. 어머니도 지적장애 3급이셔서 (아버지의 죽음을) 크게 인지는 못 하신다. 슬퍼는 하시는데 크게 인지는 못 하고 계셔서 더 안타깝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사실 자포자기한 심정이 크다. 지인분들에게 물어물어 검찰에 진정서를 냈는데 듣기로 웬만한 진정서 아니고선 (검찰에서) 안 본다고 하더라. 해보는 것까지는 해보려고 하는데... 법은 아직도 가해자 편에 서 있고, 부조리한 게 있는 것 같다. 왜 피해자만 더 피해를 보는 건지 모르겠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