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경기 지역 한 대학가에 식당을 차린 A(59)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개업 1년도 안 돼 식당매출이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년여 전만 해도 그는 나름대로 규모가 있는 식자재 유통 업체에서 일했다. 은퇴를 앞두고 30여년 동안 보고 배운 노하우로 아내와 식당 창업을 준비했다. 싸고 질 좋은 식재료를 무기로 가성비가 좋은 메뉴를 내놓겠다는 게 A씨의 구상이었다. 퇴직금에 은행 대출 5000만원을 보탠 자금으로, 대학가 내에서도 유동인구가 꽤 있는 상가 내에 점포를 구했다. 개업 초만 해도 기대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하면서 A씨의 ‘인생 2막’은 장밋빛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올해 여름에 접어들면서 상승세를 타던 매출액이 꺾였다. 방학 탓인 줄 알고 개학하면 회복하겠거니 기대했지만 이전 매출액엔 미치지 못했다. 인근에 들어선 프랜차이즈 식당이 문제였다. 최근엔 대출 원리금과 인건비, 식자재비 등 유지비를 제하면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A씨는 4일 “개업한 지 얼마 안 돼 고비가 온 것 같다”며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 나름 시간과 돈을 들여 신메뉴를 개발 중인데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은퇴세대가 흔히 택하는 창업이나 재취업 모두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창업의 경우 당장 돈벌이가 계속 줄어드는 중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60세 이상 가구주의 월 평균 사업소득은 60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만8000원(15.3%)이나 줄었다. 60세 이상 사업소득이 10만원 넘게 줄어든 건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감소율 기준으론 최대 폭이다. 60세 이상 가구주에는 직장에서 은퇴해 자영업 등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은퇴세대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가 요식업 등 자영업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출혈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대표자가 60세 이상인 사업체는 87만5000여개로 직전 1년 동안 5만2000개(6.3%)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사업체 증가량은 7만285개였다. 신생 사업체의 74%가 60세 이상 대표자의 사업체인 셈이다. 더욱이 내수침체에 더해 온라인 소비가 늘고 회식 문화도 줄어들면서 요식업 중심인 고령 가구주의 사업소득 부진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은퇴세대의 취업 시장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50대 이상 아르바이트 구직자는 무려 7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월 한 달간 새로 등록된 신규 이력서를 분석한 결과 2014년 768명에 그쳤던 50대 이상 구직자는 올해 5403명까지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연령의 구직자 증가 비율인 4.7배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
은퇴세대가 일자리를 얻더라도 3명 중 1명은 단순노무라 만족도를 따지는 게 사치인 현실이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65∼79세 인구 576만5000명 중 취업자는 38.3%인 220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0.9%(12만1000명) 늘어난 수치였다. 이들 중 단순노무 종사자가 3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농림어업 숙련종사자(26.1%), 서비스·판매종사자(16.3%), 기능·기계 조작 종사자(13.6%) 등 순이었다. 55∼79세에서도 단순노무 종사자가 24.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 대부분 구성원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최근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2018 은퇴백서’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의 은퇴 예상 연령보다 실제 은퇴 연령이 5년 정도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인 25∼74세 2453명 중 비은퇴자 1953명이 꼽은 은퇴 예상 연령은 평균 65세였다. 나머지 은퇴자 500명은 자신이 62세에 은퇴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론 그보다 5년 빠른 57세에 은퇴한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문제(33%), 권고사직 등 비자발적 퇴직(24%) 등이 주요 사유였다.
자녀가 취업을 하더라도 은퇴세대의 부담이 완전히 덜어지는 건 아니다. 직장인 3명 중 1명은 여전히 부모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고정수입이 있는 직장인 1274명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체 중 36.7%가 자신을 경제적, 정신적으로 부모에 의존하는 캥거루족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월급이 적어서’라는 응답이 64%(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부모에게 지원받는 부문은 ‘주거’가 69.6%로 가장 많았다. 일반 직장인 소득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인 집값이 자녀의 부모 의존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지원을 받는 직장인 중 78.8%가 부모와 동거 중이었고, 이중 60.8%는 동거의 이유로 ‘집값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비은퇴자의 53%가 ‘노후준비가 어렵더라도 자녀를 우선 지원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노후에 자녀가 자신을 돌봐줄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는 20% 수준에 그쳤다. 연구소 측은 “자녀부양을 노후준비보다 우선시하는 태도가 우리나라 노후준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