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단독] 6500km 타지서 눈 감은 조선인들, 75년 만에 고국 품으로

정부, 美·日 타라와 전투서 사망한 징용자 유해 봉환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 강제 징용돼 6500㎞ 떨어진 타라와 섬에 끌려간 한국인의 유해가 7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정부가 미국과 일본이 맞붙은 타라와 전투에서 숨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봉환을 위해 최근 미국 정부와 긍정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에서 심사 중인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면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 봉환 작업이 처음으로 시작된다.

6일 행정안전부와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과거사지원단 및 재단 유해봉환 추가 증액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당초 유해봉환 관련 내년도 정부예산은 7억1000만원이었지만 타라와 전투를 비롯한 태평양 전쟁 유해봉환 사업이 추가 반영되면서 10억원이 증액됐다. 

타라와 전투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군이 일본군이 점령한 타라와섬에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태평양 중남부에 위치한 타라와섬은 15개의 작은 산호초 섬들로 이뤄진 곳으로 현재는 키라비시 공화국의 땅이다. 미군에게 타라와섬은 일본 오키나와 공략과 태평양 수송로 확보를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 해병대 2사단과 육군 27사단 1개 연대의 3만5000명은 그해 11월 20일부터 사흘 동안 일본군 4800여명이 지키던 타라와섬의 베티오라는 작은 산호초 섬 공략에 나섰다. 76시간의 전투에서 미군과 일본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6700여명이 숨졌다.
미국 국가기록관리청이 수집한 일제에 의해 타라와 섬으로 끌려가 부상당한 한국인 노동자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정부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타라와섬에서 발굴한 아시아계 유해가 일본 정부에 인계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뒤늦게 DPAA에 협조를 요청했다. 최소 600여명에서 최대 1400여명에 이르는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가 일본군의 타라와섬 요새화 노역에 동원됐으며 이들 대다수가 전투에서 숨졌다. 정부는 지난달 초 방한한 존 버드 DPAA 감식소장을 만나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인도받기로 협의했다. 행안부는 조만간 담당자를 DPAA에 파견해 후속 논의를 이어간다.

유해봉환 업무를 담당하는 행안부는 지난달 1일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간 뒤 유해봉환에 필요한 직원 파견과 유전자(DNA) 감식, 수송비용 등을 급히 반영해 국회 행안위에 증액을 요청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예산소위 심사에서 증액된 예산이 삭감되지만 않는다면 타라와 전투에서 사망한 강제징용 노동자 유해가 내년부터 고향으로 순차적으로 돌아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DNA 감식을 거쳐 한국인으로 판정된 유해는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희생자 가족 DNA와 대조 후 일치할 경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한편 행안부는 지난달 30일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 업무를 전담하는 유해봉환과를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내에 새로 만들었다. 한일관계 경색으로 일본 정부의 협조가 중단된 2011년 이후 일본 내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은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이다. 정부는 지난달 타라와 전몰자 유해 TF를 구성, DPAA와 협력채널을 활용해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 송환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 등 민간단체를 통한 유해봉환 사업도 지원한다.

강 의원은 “행안부에서 요청한 예산 10억원 중 7억원 이상은 내년도 예산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2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대일항쟁기 때 군인과 노무자로 강제 동원됐다. 다음 주 열리는 한일의원연맹총회에서 일본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유해봉환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