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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의 꿈 품고 한국에… "에이즈 검사 받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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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산하 위원회 "원어민 영어교사에 HIV·마약류 검사 의무화는 차별" / 지난해 문재인정부 출범 후 해당 제도 폐지 / 피해자 보상 어떻게 될까
한국 정부가 과거 원어민 영어교사 등 회화지도(E-2) 비자 소지 외국인에게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검사가 반드시 포함된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을 의무화한 것은 부당한 차별, 그리고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의 권고적 견해가 나왔다.

법무부는 지난해 문재인정부 출범 후 우리 국가인권위원회 제안을 받아들여 해당 조치를 폐지한 상태다. 하지만 UNHRC은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에게 반드시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해 우리 정부가 어떤 보상 조치를 취할 것인지 주목된다.

◆대학서 영어 가르치던 미국인 "HIV 검사 못 받아"

7일 법무부에 따르면 미국인 A(40·여)씨가 지난 2013년 7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UNHRC에 제기한 진정사건 심사가 최근 끝나 UNHRC가 위원회 차원의 ‘견해’를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미국 대학에서 교육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캘리포니아주 교원 자격증도 딴 A씨는 2006년 3월 한국에 입국해 경기도 소재 모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데 이듬해인 2007년 12월 법무부는 한국인이나 한국계 재외동포가 아닌 외국인 원어민 교사에게 E-2 비자를 부여하는 조건으로 HIV 및 마약류 검사결과 제출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새롭게 도입했다. HIV란 에이즈(AIDS)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이 제도에 따라 2009년 초 관할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을 요구받은 A씨는 몹시 불쾌한 심정이 됐다. 그가 속한 대학 측도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신체검사 결과서를 빨리 내라. 그렇지 않으면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압박을 가했다. 대학 관계자는 “당신 혼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다른 동료 원어민 교사들 일자리까지 위태로워진다”고 A씨를 설득하기도 했다.

◆미국 돌아가 헌법소원 제기했지만 '각하' 처분 종결

하지만 자신을 ‘잠재적’ HIV 보균자 내지 마약사범으로 취급하는 듯한 한국 정부 태도에 크게 실망한 A씨는 신체검사를 거부하고 2009년 7월 대학에 사직서를 낸 뒤 곧장 미국으로 출국했다.

귀국한 A씨는 태평양 건너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에 나섰다. “외국인 E-2 비자 대상자에게 HIV 및 마약류 검사를 포함한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을 의무화한 것은 헌법상 평등권 및 사생활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우리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현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는 장서연 변호사가 당시 A씨 편에서 헌법소원을 대리했다.

헌재는 2년간 심리한 뒤 2011년 9월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A씨의 헌법소원 제기가 법률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헌재는 “출입국관리사무소가 A씨에게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거나 출석을 요구한 행위만으로는 A씨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당사국 보건정책 재량" vs "인종·국적 근거한 차별"

결국 A씨는 개인 자격으로 한국 정부를 유엔에 제소하는 길을 택했다. 인권 등 문제를 관장하는 UNHRC에 한국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낸 것이다. 2013년 진정을 접수한 UNHRC는 지난 5년간 우리 법무부가 낸 반박 의견서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최근 A씨 손을 들어줬다.

심사 과정에서 법무부는 “외국인의 입국 규제 시 당사국 재량이 폭넓게 인정된다”며 “HIV 등 검사가 포함된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을 요구한 건 공중보건과 공공질서 유지라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UNHRC은 “의무적 HIV 검사 정책은 A씨 같은 외국인 원어민 강사에게만 적용되고 한국인 및 한국계 재외동포 교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며 “국적과 인종에 근거한 차별”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UNHRC은 “차별이란 용어는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을 근거로 모든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모든 자유와 권리를 인지, 향유, 행사하는 것을 막는 구분, 배제, 제한, 특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유엔 위원회, "피해자에 적절 보상" 한국정부에 권고

사실 문제가 된 HIV 등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 의무화는 현재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 제도가 E-2 비자 소지 외국인을 차별하고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인권·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으면서 지난해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인권위는 법무부에 폐지를 권고했다.

결국 법무부는 지난해 7월 E-2 비자 소지 외국인을 상대로 한 HIV 등 신체검사 결과서 제출 의무화 고시를 전격 폐지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E-2 비자를 소지한 국내체류 외국인은 약 1만4300여명로 집계됐다.

UNHRC은 이번에 한국 정부에 “의무적·강제적 형태의 HIV 및 마약류 검사를 폐지하고, 이미 폐지했다면 재도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따라서 이 대목은 사실상 해결이 완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보상이다. UNHRC은 “한국 정부가 A씨에게 실효성 있는 구제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반드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A씨가 2009년 서둘러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며 입은 물질적 손해 등이 보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