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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가기록관리청이 수집한 일제에 의해 타라와섬으로 끌려간 한국인 노동자들이 부상자를 들것에 태워 가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
타라와 전투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타라와섬에 미군이 상륙작전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태평양 중남부에 있는 타라와섬은 15개의 작은 산호초 섬들로 이뤄졌으며 현재는 키리바시공화국의 땅이다. 미군에게 타라와섬은 일본 오키나와 공략과 태평양 수송로 확보를 위해 반드시 차지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 해병대 2사단과 육군 27사단 1개 연대의 3만5000명은 그해 11월20일부터 사흘 동안 일본군 4800여명이 지키던 타라와섬의 베티오라는 작은 산호초 섬을 공략했다. 76시간의 전투에서 미군과 일본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총 6700여명이 숨졌다.
행안부는 지난달 1일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간 뒤 유해봉환에 필요한 직원 파견과 유전자(DNA) 감식, 수송비용 등을 급히 반영해 국회 행안위에 증액을 요청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예산소위 심사에서 증액된 예산이 삭감되지만 않는다면 타라와 전투에서 사망한 강제징용 노동자 유해가 내년부터 고향으로 순차적으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DNA 감식을 거쳐 한국인으로 판정된 유해는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희생자 가족 DNA와 대조 후 일치하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앞서 행안부는 지난달 30일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봉환 업무를 전담하는 유해봉환과를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새로 만들었다. 정부는 지난달 타라와 전몰자 유해 TF를 구성, DPAA와 협력채널을 활용해 태평양전쟁에 끌려간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해 송환에도 나선다.
강 의원은 “행안부에서 요청한 예산 10억원 중 7억원 이상은 내년도 예산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며 “20만명이 넘는 한국인이 대일항쟁기 때 군인과 노무자로 강제 동원됐다. 다음 주 열리는 한일의원연맹총회에서 일본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유해봉환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