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만성적인 임금 체불 등 열악한 노동현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정비 노동자는 하루 평균 4.5시간의 연장근무를 해 1개월간 무려 142시간의 연장근로를 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김씨 같은 하청업체 비정규직들이 고된 연장근무와 고위험 업무에 시달렸음에도 연봉은 원청인 발전소 정규직의 1/3도 채 되지 않았다. 발전소 측은 오히려 정비 횟수를 감축하는 등 눈앞의 이익만 좇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11월 국회 토론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가 일하다가 사고를 당한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해 발전 5사(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7710명으로 전체 근로자 1만9715명 가운데 39.1%에 달했다. 10명 가운데 4명꼴로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셈이다. 5사 가운데 故 김용균씨가 소속됐던 한국서부발전은 전체 3946명 중 비정규직이 1562명으로 39.5%에 달했다.
특히 문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연료운전, 경상정비, 소방방재, 경비 등 위험도가 높은 업무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안전의 외주화’가 비정규직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가 지난 4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5년간 발생한 발전소 안전사고는 346건으로 이 중 337건(97%)에서 비정규직이 다치거나 사망했다. 사망한 노동자 40명 중 37명(92%)은 비정규직이었다.
박준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직국장은 당시 토론자료에서 “발전5사는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 비교해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나 정규직 전환에는 미온적”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연료운전, 경상정비, 소방방재 등 위험도가 높은 업무에 집중됐다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안전의 외주화’가 비정규직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박 국장은 당시 토론자료에서 “발전5사는 주요 에너지 공기업과 비교해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나 정규직 전환에는 미온적”이라고 꼬집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발전소 노동자들은 최고 142시간씩 연장근무를 하지만 임금체불에 시달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11월 국회 토론회에 제출한 한 발전소 하청업체 A사의 정비 노동자(35명) 3월 연장근무표를 분석한 결과 모든 정비 노동자들이 3월 1개월간 5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실제 연장시간에 1.5를 곱한 수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 노동자는 213시간의 연장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나 실제 연장근무 시간은 무려 142시간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평균 4.58시간의 연장근무를 한 수치이다.
임금체불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A사는 연장근로수당 지급 기준 시간을 70시간까지만 인정하고, 70시간을 넘긴 연장근로 시간에 대해선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임금체불을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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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위협받는 고위험 직무였음에도 김용균씨의 연봉은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 정규직 직원 평균 연봉의 1/3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13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1년 비정규직 근로자로 계약한) 김씨의 연봉은 야근 수당과 연장 근로 등 각종 수당을 합쳐서 겨우 2700만원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반면 원청업체 한국서부발전 정규직 직원의 평균 연봉은 9000만원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한국서부발전 정규직 직원의 평균 연봉은 △2015년 8459만원 △2016년 9085만원 △2017년 915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발전 5사가 민영화-외주화된 이후 수익성 감소를 우려해 정비 횟수도 단축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O/H공사’로 불리우는 오버홀(overhaul, 분해수리)은 기계류를 완전히 분해하여 점검-수리-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OH공사를 소홀히 하면 발전기가 불시정지하거나 환경오염물질의 법적 규제치 초과 배출이 우려된다.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하지만 O/H공사 시 발전소를 정지시켜야 해 수익이 떨어지고, 노후 부품 교체 등에 큰 비용이 든다. 자료에 따르면 발전소 측은 계획된 횟수보다 적게 정비를 실행했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의 한 노조간부는 2007년 출간된 책 ‘전력산업의 공공성과 통합적 에너지 관리’에서 “개별발전소에서 예산을 올리면 발전사 본부에서 60%만 승인되어 내려온다. 그리고 연간 20%씩 예산을 줄이라고 한다. 결국 올린 예산에서 40%만 쓰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공사(유지보수)가 무척 많은데 결국 하지 말라는 얘기다. 당장 나가 터지기 전까지 손대지 말고 돌리다가 터지면 그때 고치라는 거다”라고 털어놨다. 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의 또다른 간부는 “이런 식으로 하다가 언젠가는 큰 사고 한 번 날 거다. 심지어 단축되는 O/H 문제 때문에 모이면 ‘우리는 말고 다른 데서 한 번 터져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제공 |
한편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의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3시20분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의 트랜스타워 5층 내 컨베이어 점검 작업을 하던 중 연료공급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채로 직장 동료에게 발견됐다.
태안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사고 전날인 지난 10일 오후 6시쯤 출근해 11일 오전 7시 30분까지 트랜스타워 5층 내 컨베이어를 점검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일 밤 10시 20분쯤 같은 회사 직원과 통화 이후 연락이 안 돼 같은 팀 직원들이 김씨를 찾던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해 세상에 알려졌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