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전시관 뒤편의 바다에서는 고려청자 등 2만5000여점의 유물이 나온 ‘태안선’이 발견됐다.
전시관이 개관하고 여는 첫 전시회 ‘바다에서 찾은 고려의 보물들’이 더욱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중발굴 유물이 다른 전시회에서 공개된 것이야 여러 번이지만 거친 바닷속에 수백년을 잠들었다 다시 살아난 바로 그곳, 태안의 바다에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더욱 특별하다.
청자 매병 |
전남 신안군, 충남 원산도, 안산 대부도 등 수중발굴 지역은 서해안을 따라 여러 곳이지만 태안 바다에서의 성과는 압도적이다. 1970년대 중반 신안선 발굴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수중발굴 성과의 30% 정도가 태안 바다에서 유래했다고 할 정도다. 지금까지 발굴된 14척의 고선박 중 태안선과 마도1·2·3·4호선 5척이 여기서 나왔고, 많은 화물을 운송했던 고선박이 수만점의 유물을 품고 있었다. 전남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보관하고 있던 3만점의 유물을 가져온 전시관 소장품 중에 태안에서 나온 것이 가장 많은 것은 물론이다.
수중발굴 유물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존재감이 가장 큰 것이 도자기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단연 두드러진다.
특히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은 바닷속 고려 보물’로 꼽힌 ‘청자 모란연꽃무늬 표주박모양 주전자와 받침그릇’, ‘청자 사자모양 향로’,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보물 제1784호) 3점은 단독 전시로 꾸몄다.
마도1호선에서 나온 청자 주전자는 몸체에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고, 표주박 모양의 전체적인 모습에서 고려청자 특유의 우아함이 넘친다.
마도2호선에서 발견된 매병은 “고려시대 전성기 청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견 당시 고려시대에 매병이 ‘준’(樽)이라고 불렸으며, 꿀이나 참기름 같은 음식을 담은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죽찰을 달고 나와 가치가 더욱 크다.
바닷속에서 유물을 발굴하고 있는 잠수사의 모습.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 제공 |
단독 전시의 영광을 얻지는 못했지만 태안선에 나온 ‘청자 두꺼비모양 벼루’(〃 1782호)는 두꺼비 모양의 벼루로는 유일한 사례라 눈여겨볼 전시품이다.
아쉬운 것은 2009년 발굴돼 2016년 복원 후 태안으로 옮긴 마도1호선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예산 부족으로 전시관 일부의 단장이 끝나지 않아 천막을 뒤집어 쓴 채 관람객을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 |
지난 14일 열린 개막식에서 만난 전시관 관계자는 “상설전시실의 하이라이트는 (수중발굴 작업을 담은) 영상”이라고 소개했다. 상설전시실 한 면을 가득 채운 화면은 바닷속에서 유물을 캐내는 모습을 전한다.
문화재 발굴이 긴 시간과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쉬운 현장이 없지만 수중발굴은 바다 자체가 작업의 큰 장벽이라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노고가 크다. 특히 조류, 시야, 수심과 악전고투를 벌여야 한다. 조류의 경우 2노트(약 시속 3.7㎞) 이상이면 작업이 불가능해 밀물, 썰물이 바뀌면서 바다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정조시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시야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현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중발굴의 주무대인 서해의 수중 시야는 1m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손의 감각에 의지해 발굴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수심은 잠수를 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결정하는 요소인데 20m를 넘으면 1시간 정도 가능하고, 30m 정도의 수심에서는 25분을 넘기면 위험하다.
이런 사정은 발굴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잠수조사를 실시하려고 하였으나 며칠 동안의 비, 바람으로 수중시계가 나빠 퇴수함”( 2007년 8월 9일), “수심 또한 15m 이상으로 깊은 편이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보조호흡장비를 사용하였다. … 빠른 조류도 원활한 작업을 하는 데 방해요소가 된다”(2010년) 등 작업의 어려움을 전한 내용이 많다.
태안=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