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서방 강대국이 아프리카에서 약탈해 간 보물을 둘러싼 논쟁이 유럽에서 뜨겁게 진행 중이다. 최근 논의의 출발점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식민 시대에 대부분 강제적으로 끌어 모은 아프리카의 예술품을 본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아프리카의 유산이 유럽 박물관의 포로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세네갈의 경제학자와 프랑스의 예술사학자가 공동으로 주도하는 팀에 보고서를 주문했다. 지난달 23일 발표된 보고서에서 이들은 우선 26개의 대표적 예술품을 아프리카에 당장 돌려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현재 프랑스 케브랑리 박물관의 소장품 가운데 아프리카 관련 9만여 점은 대부분 약탈이나 강제 구매의 성격이 강했다고 폭로했다.
프랑스가 예술품 반환에 선도적 역할을 자처하는 가운데 이웃나라 벨기에에서는 9일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이 5년의 수리와 개선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은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1885년부터 1909년까지 자국보다 80배나 넓은 중앙아프리카의 영토를 지배하던 시기의 결과물이다.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벨기에가 지배하는 아프리카에서는 노예제도가 부활했고, 강제 노동에 반항하는 사람은 팔목을 절단하는 야만적 수단을 동원하곤 했다. 이때 수집한 생활 자료와 문화재, 생물과 광석 샘플 등으로 벨기에는 세계적 수준의 컬렉션을 형성했다.
벨기에 아프리카박물관이나 영국 대영박물관의 관장들은 프랑스의 반환 움직임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이런 보물이 식민주의의 상황에서 강제적이거나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유럽에 도착한 것은 사실이고 이들을 장기적으로 반환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의 해결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77년 벨기에 정부는 당시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문화재를 한 보따리 선사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이들이 국제 시장에서 거래가 됐다는 것이다. 반환 문화재가 본국 박물관으로 간 것이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판 독재자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해 줬다는 말이다. 이런 반발에 대해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식자들은 반환한 문화재의 운명이 어찌 되건 일단은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이 누구에게 문화재를 반환하는가도 쉽지 않은 문제다. 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국가 없는 사회를 형성했기 때문에 식민시대 이후 수립된 다수의 국가 사이에 과거와 역사에 대한 경쟁적 소유를 주장한다. 일명 베냉 동상은 사실은 현재 나이지리아 지역에서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이 수집해 대영박물관에 보냈다. 이를 반환한다면 베냉과 나이지리아 가운데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는가. 국가가 아니라면 해당 부족의 후손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약탈 문화재 반환의 문제는 비단 아프리카만의 쟁점은 아니다. 한국도 프랑스로부터 어려운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 낸 사례가 있고, 중국은 현재 강대국의 입장에서 다방면에서 반환을 위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에 박물관도 늘어나고 문화재에 대한 인식도 발전했지만 불과 수 십 년 전 중국의 문화혁명은 문화재 파괴의 야만적 광기의 대명사였다. 성급한 무조건의 반환만 주장하기보다는 문화재 보호의 사회적 여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문화유산은 한 민족의 정신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공동자산이기 때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