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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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도 힘들고, 돈도 없고”…폭언·성희롱도 참는 ‘알바’ 청년들

[스토리세계-청년알바의 눈물①] 알바로 생계유지하는 청년들의 비애
1년 넘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이모(27)씨는 단골 손님의 성희롱을 견디기 힘들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관둘 수도 없어 괴롭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17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계산할 때 카드를 주면서 손을 쓰다듬고 부드럽다, 느낌 좋다 등의 말을 하는 손님이 있다”면서 “싫은 티를 냈더니 불친절하다는 둥 사장한테 컴플레인을 넣겠다는 둥 으름장을 놔서 더 이상 강하게 거부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원하는 분야에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알바를 그만둘 수 없는 내 상황이 너무 슬프다”고 털어놨다.

아르바이트 청년들은 손님 등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이유 없이 욕설을 듣거나 폭행까지 당해도 혼자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수밖에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경기 악화와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줄면서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처한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자리 문제 해결은 물론, 아르바이트 청년들에게 횡포를 가하는 가해자들을 강하게 처벌하고 제재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렵게 구한 알바 그만둘 수 없어…성희롱당하고 불쾌해도 참아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 윤모(23)씨는 “진열된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데 가까이 붙으면서 냄새 좋다, 무슨 향수 쓰냐고 묻는 손님이 있었는데 너무 불쾌하고 무서웠다”며 “이런 일이 종종 있지만,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라 그만둘 수도 없어 그냥 혼자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유흥가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했던 대학생 김모(21)씨는 “‘이렇게 여리여리한 몸으로 뭘 한다고, 오빠가 옆에서 도와줄까’ ‘남자친구 있어? 오빠가 남자친구 해줄게’ 등 술에 취한 아저씨들의 불쾌한 발언을 거의 매일 들었다”며 “너무 무섭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전국 아르바이트 청년 3명 중 1명은 근무 중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와 알바몬, 알바천국이 지난달 12일부터 21일까지 전국 아르바이트 청년 6722명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31%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자 가운데 여성은 85%, 남성은 15%였다.

주요 유형은 “속옷 사이즈가 어떻게 돼? 속옷 사줄까?” “아가씨 너무 예뻐서 쳐다보느라 커피를 쏟았네” 등 ‘불쾌한 성적 발언’이 27%로 가장 많았고, ‘외모 평가’(25%)와 ‘신체접촉’(20%)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관련 기관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응답은 2%에 불과했으며, 60%가 성희롱을 당해도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피해 발생 시 어디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응답자도 68%에 달했다.

◆폭언은 기본, 폭행까지…고객 화풀이 대상 되는 알바들

아르바이트 청년들이 고객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최근 서울 은평구 연신내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고객이 매장 직원에게 포장된 음식을 집어 던지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공개된 영상 속 고객은 주문한 햄버거가 나오지 않아 오래 기다렸다며 항의하고, 직원은 이미 번호를 안내했다고 답하는 과정에서 화를 참지 못한 고객이 봉투를 던진 것으로 전해져 사회적 공분을 샀다.

지난 10월 광주 서구 화정동의 한 편의점 종업원 A(20)씨는 자신의 아내에게 술을 팔았다며 항의하러 온 윤모(60)씨에게 가슴 부위를 폭행당했고, 앞서 7월에는 인천 미추홀구의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B(25)씨가 맥주를 사면서 덤으로 초콜릿을 달라는 C(47)씨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욕설을 듣고 목이 졸리는 등 폭행을 당했다.

실제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절반 이상 손님에게 폭언·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바노조 편의점모임이 지난해 전·현직 편의점 노동자 4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손님에게 폭언·폭행을 경험한 알바생은 전체의 54.5%에 달했다. 근무 형태별로는(복수 응답 허용) 야간 근무자가 62.6%, 주간 근무자가 49.8%로 야간 근무자가 이같은 경험을 한 비율이 더 높았다. ‘폭행 경험률’로 범위를 좁히면 야간 근무자 12.2%, 주간 근무자 6.0%였다.

지난해 휴학 기간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했던 대학생 이모(25)씨는 “밤마다 술에 취한 손님들이 오면 항상 긴장 상태로 응대하느라 힘들었다”며 “그런 분들은 언제 폭력적인 행동을 할지 몰라 이상한 말을 해도,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웃으면서 들어드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알바로 생계유지 청년 증가…“일자리 해결·알바생 향한 횡포 제재 필요”

극심한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특정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프리터족’이 늘고 있다. 프리터족이란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프리(Free)와 노동자를 뜻하는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다. 지난해 7월 알바천국에서 회원 1110명에게 설문한 결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38.7%), ‘당분간 취업할 생각이 없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27.6%)라고 답한 프리터족이 66.3%에 달했다. 이는 5년 새 23.4%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이 근무 중 성희롱·폭언·폭행 등에 시달리면서도 일자리 유지를 위해 견뎌내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일자리 문제 해결과 함께 횡포를 가하는 가해자들을 강하게 처벌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7월15일 충남 당진시 한 편의점에서 점주가 상품을 운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7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알바노동시장뿐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전체적으로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며 “수요 대비 공급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알바시장까지 확대된 것”이라고 청년들이 처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되겠다”면서도 “아르바이트 청년들을 ‘을’로 대하며 ‘갑질’하는 이들의 횡포를 억제하기 위해 강한 처벌과 제재를 가하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