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하 추상의 선구자 한묵(1914∼2016)에 대한 설명이다. 그의 회화의 특징은 화려한 원색과 절제된 기하학적 구성의 절묘한 융합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무한히 순환하는 우주의 에너지를 담고, 이 에너지는 화폭 밖으로 무한대로 퍼지며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는 색, 선, 형태라는 순수 조형요소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질서와 생명력의 실체를 탐구하고자 했던 작가의 예술관 발현이다.
1997년 6월, ‘금색운의 교차’(1991) 앞에 앉아 있는 한묵. 196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작업해온 한묵은 현실의 삶을 우주의 에너지로 표현하려 했다. |
전시는 그가 이룩한 화업(畵業)을 전반적으로 조명해, 작가가 추구했던 작업세계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 한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전 시기, 전 장르의 작품 중 엄선한 130여점을 소개한다. 특히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60여점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한묵은 어릴적 아버지로부터 동양화를 배웠으나 10대 후반부터 서양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만주와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운 그는 한국에서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했다.
가족(1957), 캔버스에 유채. |
흰구성(1965), 캔버스에 유채. |
이어 한묵의 예술세계를 변화시킨 결정적 사건이 일어난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었다. 작가는 달까지 도달한 인간의 힘을 미지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용기와 치밀한 과학으로 규정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질서가 더해졌다고 여겼다.
나선 N.19(1975) 종이에 판화·에칭. |
판화 작업으로 독창적인 방식을 체득한 작가는 이를 캔버스에 도입하면서,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 선들이 이루어내는 또 다른 회화세계를 개척했다. 이어 원심과 구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역동적인 화면을 구현하기에 이르렀고, 1980년대 후반에 작가의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기하 추상의 대작들을 완성했다.
상봉(1991), 캔버스에 아크릴. |
기하 추상과 더불어 1980년 후반부터는 구상과 추상의 구분에서 벗어난 작업도 눈에 띈다. 작가의 관심이 우주에서 인간, 그리고 탄생의 비밀로 심화하면서 먹과 종이 콜라주를 통해 동양사상에 근간을 둔 작업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태양을 잉태한 새(1996), 아크릴·종이콜라주. |
이번 전시는 한묵의 50여년 작업을 통해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정신세계와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이어지며 3월 9일에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규명하는 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