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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10명중 6명 “혐오에서 안전하지 못해”…“근데, 난 혐오표현 안써요”

[혐오의파시즘-국민의식조사]② 국민이 느끼는 혐오 현황과 실태
올 한해 ‘혐오’가 우리 사회를 ‘갈등 공화국’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 사건, 이수역 폭행 사건 등을 둘러싼 남녀 간의 성 대결과 퀴어 축제 찬반 갈등, 다문화 가정을 향한 차별적인 시선 등 성별, 성적 취향, 인종, 종교 등 자신과 다름을 바탕으로 한 혐오는 사회갈등과 증오 범죄를 키우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국민 60% 이상, “혐오 발언·행동에서 안전하지 못해”

대한민국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혐오 발언·행동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8일 세계일보가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 및 여론조사업체 세종리서치와 함께 전국 성인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지난 19일 진행한 ‘혐오의 파시즘 현상 국민의식조사’ 결과(신뢰수준 95%, 최대허용오차 ±3.08%P)에 따르면 ‘주변에서 혐오적인 발언이나 행동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1.2%는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에 반해 ‘안전하다’는 응답은 26.7%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2.1%였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워마드 등 극단적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탄생한 혐오 표현들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산해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치녀’(한국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 ‘한남충’(한국 남자를 벌레에 비유한 속어), ‘틀딱’(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을 비하하는 말) 등은 이제 익숙한 표현이 됐을 정도다. 혐오가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특히 직업별로 살펴보면 서비스영업직(69.9%)이 스스로 혐오 상황에서 가장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 있었는데, 이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벌어질지 모를 고객들의 ‘갑질’에 노출된 서비스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다음으로 학생(68.4%)의 응답률이 높았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라서 혐오 표현을 별 뜻 없이 ‘그냥’ 사용한다는 학생들이 늘고 있어 언어습관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 70% “우리 사회 혐오 과거보다 심해져”

더구나 국민 대다수는 우리 사회에 혐오 문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적 혐오가 과거에 비해 심해졌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70.8%는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고 대답했다. 반면 ‘더 심해지지 않았다’는 응답은 18.2%,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는 11.0%였다.

연령대별로 혐오 현상이 과거보다 심해졌다고 보는 응답자는 30대가 76.2%로 가장 많았고, 19~29세가 74.3%, 40대가 73.6%로 그 뒤를 이어 사회활동이 활발한 연령대에서 골고루 높은 수치를 보였다.

실제로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혐오 표현으로 인한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혐오 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혐오 피해 경험비율은 성 소수자가 94.6%로 가장 높았고, 여성(83.7%) 장애인(79.5%) 이주민(42.1%) 순이었다. 오프라인 혐오 표현 피해 경험비율도 성 소수자가 87.5%로 가장 높았고, 장애인(73.5%), 여성(70.2%), 이주민(51.6%)이 그 뒤를 이었다.

◆국민 10명 중 6명, “혐오 표현 사용한 적 없어”

다만 많은 사람들은 과거보다 혐오가 심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도 ‘직접 혐오 표현을 사용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0.8%가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9.2%만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34.2%)보다는 남성(44.2%)이 혐오 표현을 더 많이 사용했고, 학생의 절반 이상(54.1%)이 혐오 표현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권주한 세종리서치 대표는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하고 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혐오 표현을 사용한 경험에 대해선 비교적 낮은 응답률이 나온 것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자기들이 혐오 표현을 하는 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있을 수 있다”며 “또 실제로 혐오 표현을 쓰는 부류가 어느 정도에 국한돼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