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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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복무와 형평성 vs 소수자 인권보호…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논란 [김현주의 일상 톡톡]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체복무제 방안을 교정시설 내 36개월 합숙 근무로 확정해 오는 2020년 1월 시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않고, 사회 공동체에 기여할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벌적 성격이 강한 방안을 정부안으로 확정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양한 대체복무 방안 가운데 당국은 결국 복무 기간 및 강도가 가장 높은 방안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방안이 과도한 복무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권을 또 다른 형태로 침해한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확정된 방안이 대체복무 대상자의 양심을 판정하는 심사위원회를 국방부 소속으로 한 것을 놓고도 잡음이 적지 않습니다. 인권단체들은 국방부 산하에 위원회를 두면 국방부의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한 바 있습니다.

물론 국방부 대체복무 안은 일정 부분 징벌적인 성격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대체로 납득할만한 복무기간과 근무방식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국제인권기구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역의 1.5배 이하로 대체복무제를 운용할 것을 권고한 것을 고려할 경우 36개월 대체복무는 다소 길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전문연구요원과 공중보건의 등의 대체복무기간이 34∼36개월인 것과 비교해보면 현역병 및 타 대체복무자와의 형평성 등을 두루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은 물론 일반인까지 병역기피 사례가 불거질 때마다 상당한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순간 종교와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존중하는 선한 취지에서 도입된 대체복무제 자체가 비판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대체복무 신청자 추이를 모니터링해 국방의 의무를 꼼수로 피하려는 시도를 제지해야 한다며 시행 이후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적절한 복무기간과 근무 형태를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정부의 대체복무 방안이 교도소 36개월 합숙 근무로 결정되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번 정부안이 징벌적 요소가 다분하다며 비판했고, 일반 시민 사이에서는 적합하다는 의견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방부는 28일 '병역법 개정안'과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복무 기간을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 수준인 36개월로 정하되, 이후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1년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고, 교정시설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합숙 근무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교도소 36개월 합숙근무 찬반 논란 활활

국방부 대체복무제 도입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임재성 변호사와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참여연대 박정은 사무처장, 김수정·오재창 변호사는 이날 '정부의 징벌적인 대체복무안 수정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들은 "대체복무 여건이나 강도가 현역병보다 무거운 상황에서 복무 기간까지 2배로 설정하면 형평성은 무너지고, 대체복무제는 징벌로 기능하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병역거부자를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도록 한 것을 두고도 이들은 "과거 수십년동안 이어진 인권침해를 대하는 반성이나 성찰이 조금도 담기지 못한 대체복무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대체복무제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마련돼야 하는데 이번 방안은 그러지 못하다"고 힐난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장 큰 문제는 대체복무 기관이 교정시설이라는 것보다 단일한 시설이라는 것"이라면서 "다른 나라를 보면 대체복무가 어떻게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될지 고려해 공공적인 일, 사회 취약계층을 돌보는 일을 다양하게 시킨다"고 말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복무와의 형평성과 소수자 인권보호를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많은 논의가 이뤄졌지만, 정부안에는 결국 가장 징벌적인 요소만이 집약되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 단체는 합리적이고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국회가 나서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주요 시민단체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이날 국방부가 발표한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정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일반 시민들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징벌적인 성격을 갖춰 지나치다는 의견과 개인에게 선택권을 제시한 점에 비춰볼 때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한 시민은 "교도소에서 복무하는 것은 전과 기록만 남지 않을 뿐 실형으로 처벌받는 것과 사실상 똑같은 게 아니냐"며 "현역병과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군인들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현역 군 복무를 마치고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는 또 다른 시민은 "병역은 헌법상 의무이지 입맛대로 골라 먹는 권리가 아니다"라며 "대체복무안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권위 "국제인권기준 충분히 반영 못해 깊은 우려"

인권위는 국방부의 대체복무제 도입안에 대해 인권 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인권위는 이날 최영애 인권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국방부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도입안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 국제인권기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인권위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대체복무신청자에 대한 공정한 심사를 위해 군과 독립된 심사기관을 마련하라고 권고해왔다"며 "현역 군복무기간의 최대 1.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사회의 평화와 안녕, 질서유지 및 인간 보호를 위한 봉사와 희생정신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서 복무하도록 수차례 권고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국방부 법률안은 현행 제도와 비교할 때 복무 영역이나 기간 등 구체적인 복무내용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은 내용의 법률안이 그대로 제정된다면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와 시민사회는 물론, 큰 기대를 가지고 주목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습니다.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인권위는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복무 영역과 기간 등 구체적 제도안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점, 심사기구를 국방부 산하에 설치할 경우 심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힘든 점 등 문제점을 개선하고 바람직한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수 있도록 입법적 조치가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복무기간 국제인권기준 맞추고 대체복무분야 다양화…인권 침해 최소화해야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도입한 다른 나라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 복무 기간과 동일하거나, 국제기구 권고 기준인 1.5배를 초과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재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25개 나라 가운데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의 1.5배를 넘는 나라는 5개 나라(20%)에 불과하지만 그리스(15개월), 키르기스스탄·조지아·몽골(24개월) 등 4개 나라는 절대적인 대체복무 기간이 한국보다 훨씬 짧습니다.

대체복무 기간이 36개월이나 되는 나라는 한국과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등 3개 국뿐입니다. 그나마 아르메니아는 현역이 24개월로 대체복무 기간이 1.5배를 초과하지 않습니다.

한 전문가는 "그나마 다행인 건 당국이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면서 대체복무 기간을 1년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이라며 "당국은 대체복무제 정착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제도가 정착하는 대로 즉각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복무기간을 국제인권기준에 맞추고 대체복무 분야를 다양화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의 복지 현실을 감안하면 대체복무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많다. 대체복무 심사 기구에도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의 취지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시행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요소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당국이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권·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정부는 여론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반대의 목소리도 경청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입법 기간에 관련 단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며 "인권 및 시민단체가 접촉을 원하면 기꺼이 만나 의견을 들어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