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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7.8% "틀딱·연금충들"… 노인 16.6% "들어본 적 있다" ['세대 갈등'에 멍드는 한국 - 신년특집]

(상) 고령화 사회, 커지는 갈등 / 청장년 1000명 온라인 설문조사 / 할매미 등 노인 비하·혐오 표현 넘쳐나 / 청년층 온라인 이어 실생활에서도 사용 / 청년 42% “노인복지 확대로 부담 느껴” / 노인 56%도 세대 갈등 원인으로 꼽아 / 청년 60% “노인들이 사고방식 바꿔야” / 노인 56% 공감… 59% “교육 필요하다” / 세대 연대와 통합 이끌어 낼 정책 절실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 연금충(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 할매미(시끄럽게 떠드는 여성 노인), 노인충(노인 + 벌레)’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들이다. 과거에도 ‘노인네’, ‘꼰대’ 등 노인을 비하하는 말은 있었다. 하지만 윗세대를 벌레로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에 기대 상대방의 인격권을 쉽게 침해하는 세태 탓도 있지만 세대 간 단절과 거부감 확산 영향이 크다.

31일 세계일보와 오픈서베이가 청장년층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두 집단은 상호 간에 이해할 기회나 경험이 거의 없다고 호소했다. 양측이 꼽은 세대 갈등의 원인에서도 시각차가 나타났다. 

◆청년의 7.8%… “노인 혐오 표현 사용”

20·30대 청년층의 7.8%는 틀딱과 연금충 등 노인 혐오 표현을 온라인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생활과 온라인에서 모두 자주 사용한다’는 응답이 2.0%, ‘실생활과 온라인에서 사용해본 적이 있다’는 5.8%였다. ‘실생활에서는 사용한 적 없고 온라인에서만 사용한다’는 4.0%였다. 청년층의 다수는 해당 단어에 대해 알지만 사용한 적은 없거나 아예 해당 용어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60대 이상 장년층이 혐오 표현을 경험한 비율은 더 높았다. ‘실생활과 온라인에서 모두 실제로 들어본 적 있다’는 응답이 16.6%였고 21.4%는 ‘온라인에서 본 적 있다’고 답했다. 청년층이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는 응답보다 장년층이 직접 들은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청년들에게 노인 혐오 감정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장년층의 9.0%는 ‘청년들에게 노인 혐오 감정이 매우 있다’고 답했고 42.8%는 ‘있다’고 응답했다. 노인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부정적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 노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가중했다.

‘이 사회에서 노인, 장년층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무엇인가’(중복 응답)라는 질문에 ‘노후 소득 마련, 생계유지’(74.6%)와 ‘신체적·정신적 건강 유지’(61.8%)가 1, 2위를 차지했고 ‘노인의 사회적 역할 부족’(54.0%)과 ‘노인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42.8%), ‘자존감 유지’(36.8%), ‘가족, 친구 등 인간관계 단절’(30.8%) 등이 뒤를 이었다.

청년들만 노인에게 혐오를 느끼는 건 아니었다. 장년층이 청년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상당했다. ‘청년들의 행동에 불쾌감 또는 혐오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0명 중 7명(71.8%)이 ‘그렇다’고 답했다.


◆세대 갈등은 고령화 영향… 청년 41.8%, 노인 56.2% 공감

그나마 다행인 건 복지 배분 등 사회구조적 문제로 개별 노인을 싫어하는 청년이 아직 많지 않은 점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노인 개개인을 사회구조적 문제 때문에 불쾌하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청년은 10명 중 1명 수준이었다.

청년들은 노인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로 ‘연장자라는 이유로 훈계하고 대접받으려고 한다’(65.8%)를 가장 많이 들었다. 이어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아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53.8%),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52.6%),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등 이기적이고 뻔뻔하다’(52.4%) 등이었다. ‘고령화 시대에 의존적인 노인이 너무 많아 청년층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불쾌감을 느끼는 비율은 12.8%에 그쳤다.

하지만 세대 갈등의 원인을 묻는 말에는 ‘고령화로 노인이 늘어난 데다 노인 복지가 확대돼 청년층 부담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1.8%로 늘어났다. 청년들이 1위로 꼽은 세대 갈등 원인은 ‘노인들이 일방적으로 어른의 권위를 강요하는 등 가부장적인 태도 때문에’(66.4%)였다.

사회문제로 주변 노인을 미워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주는 불이익이 커질수록 집단 대 집단으로 맞서거나 반감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갈등이 심해지면 구조적 문제가 개인에 대한 증오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서둘러 세대 간 연대와 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인들이 고령화와 복지 문제를 세대 갈등의 원인으로 꼽은 비율(56.2%)은 더 높았다. ‘청년 세대와 어울리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나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60.0%)이라는 응답에 이어 두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노인이 청년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로는 ‘연장자의 지혜와 깊이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행동한다’(55.6%), ‘부모 봉양을 하지 않으려는 등 현 노인 세대와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52.2%), ‘자신은 노인이 되지 않을 것처럼 노인을 쓸모 없는 존재로 취급한다’(49.0%), ‘현 노인 세대 덕분에 윤택하게 자랐음에도 노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45.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세대 간 교류 부족…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늘려야”

청년층은 세대 갈등을 줄이는 방안으로 ‘노인 세대가 시대 변화를 깨닫고 과거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59.8%)를, 장년층은 ‘청년층의 부양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회 전반적으로 고령화에 대비해야 한다’(67.0%)를 첫 번째로 꼽았다.

다만 장년층도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했다. ‘노인들이 사회 변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사회가 재교육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한다’에 58.6%가 동의했고, ‘노인 세대가 시대 변화를 깨닫고 과거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에도 56.6%가 공감했다. ‘청년들이 노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화, 늙음에 대해 교육받아야 한다’는 47.8%, ‘청년과 노인이 교류할 수 있도록 정부나 시민단체가 지원해야 한다’에는 45.8%가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 대다수는 ‘일단 노인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노인들이 사회 변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사회가 재교육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한다’(54.2%), 고령화 대비(45.6%), ‘청년들이 노인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화, 늙음에 대해 교육받아야 한다’(44.0%) 등에도 동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청년들의 12.6%가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자주 생각한다’고 답했고 ‘생각해본 적 있다’는 응답도 56.2%에 달한 만큼 각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영희 한국성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세대 갈등이 심해지면 단순히 노인과 노화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것에서 나아가 노인이 사회의 주요 일원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세대 간 이해와 교류, 상생을 도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미·김준영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