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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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의 탈 쓴 혐오… "원본부터 없애라"가 면죄부? [페미 논란]

③남성들 향한 일그러진 적개심의 산물, ‘워마드’
“‘워마드’를 편파수사하지 말라. 일간베스트, 오늘의유머, 디씨인사이드 같은 남초 커뮤니티들이 워마드보다 심각한 수위를 자랑하는데 한 번도 문제 삼은 적이 없다.”

경찰이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수사에 속도를 내던 지난해 8월,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이 같은 내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참여 인원은 8만여명. 비슷한 청원도 상당수였다. 여성단체들도 “워마드 수사는 편파수사”라며 경찰을 규탄하고 나섰다. 그러나 경찰은 통상적인 수사 절차에 따른 것일 뿐이며 다른 커뮤니티들도 범법 행위가 적발될 때마다 수사했다고 반박했다.

경찰의 ‘워마드’ 운영자 수사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8월, 한국여성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찾아 “편파수사”라며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워마드의 기행과 범법 행위는 여전하다. 워마드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온라인 공간 곳곳에 퍼져 있는 ‘영영 페미니스트’, 일명 ‘넷 페미’들은 “워마드의 행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를 그대로 비추는 ‘미러링’이므로 비판이나 처벌에 앞서 ‘원본’부터 없애라”고 주장한다. 기성 페미니즘 진영 일부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해외 서버·익명성에 기대 범법 일삼아

호주 아동 성추행, 홍익대 누드모델 몰래카메라 사진 유포 및 2차 가해, 고려대 등 남자화장실 몰래카메라 유포, 태아 낙태 사진 게시, 배우 김주혁과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종현 사망 조롱, ‘PC방 살인 사건’ 희생자와 ‘강릉 펜션 사고’ 학생들 조롱, 노인 목에 흉기를 들이댄 사진, 천주교 성체와 코란 등 종교 상징물 훼손, 성당 방화 예고, 문재인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 합성사진 등….

여성우월주의와 남성 혐오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 대문 사진. 2017년 만들어진 워마드는 그동안 갖은 기행과 범법 행위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워마드 캡처
워마드가 논란의 중심에 선 사건들은 이처럼 다 언급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도덕적으로 지탄받는데 그칠 일도 있지만 대부분 법의 단죄를 받아야 할 행태들이다. 그러나 서버가 해외에 있고, 운영진이 경찰 수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는 바람에 실제 처벌까지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워마드에 사진·연락처 등이 올라와 곤욕을 치른 피해자들이 실재하는데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

9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강릉 사고 희생자들과 그 유족을 모욕·조롱한 워마드를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팩스로 집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답변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금까지 워마드가 수사 대상에 오를 때마다 번번이 수사를 마무리짓지 못했다. 이 때문에 워마드 회원들이 죄의식 없이 활개를 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말 워마드에 올라온 ‘강릉 펜션 사고’ 피해 학생들 조롱 글. 이 사고는 강원 강릉시의 한 펜션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고3 남학생 10명이 사상한 사고다.
워마드 캡처
워마드의 기행과 범법 행위가 끊이지 않으면서 갈수록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직장인 정모(33)씨는 “워마드 기사를 볼 때마다 기분이 무척 나빠진다”며 “평소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한 데서 오는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워마드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정의하며 “올해(2019년) 안에 워마드를 끝장내겠다”고 선포하기도 했다.

◆옹호 vs 선긋기… 고심 깊은 페미 진영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워마드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해 워마드의 성체 훼손 논란 직후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못 박은 한국여성대표연합이 대표적이다. 반면 몇몇 여성학자를 비롯, 개개인과 넷 페미들은 워마드를 옹호하고 나섰다. 각종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이 문제로 설전이 오가는 상황이 종종 벌어졌다.

제73주년 광복절인 지난해 8월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 한 여성이 워마드 표식을 들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인파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주영 기자
워마드의 미러링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혐오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는 하나의 전략이라는 게 옹호론자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수사당국과 학계 등에선 이런 이유만으로 면죄부가 주어질 순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며 “설령 미러링 행위가 옳다고 해도 죄에 상응하는 처벌은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워마드를 감싸려다 페미니즘 진영 전체가 거센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역사학자이자 한양대 연구교수인 전우용씨는 워마드를 겨냥해 “혐오에 반대한다고 외치면서 혐오가 뭔지도 모르는 저 처참한 무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며 “한국 사회에서 성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도 워마드 같은 집단을 선봉으로 삼아선 결코 이길 수 없다”고 꼬집은 바 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