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텐들러 다니엘씨를 만났다. 그의 명함에는 독일건축사와 건축생물학 컨설턴트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다.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사무실 창가에는 크고 작은 화분 30여개가 놓여있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녹색식물 때문인지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는 어번 디테일 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다. 창업하기 직전 다니던 건축사무소의 동료와 창업했다. 한국인 건축가와 독일인 건축가가 머리를 맞대고 한옥 등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 그의 사무실 특징이다.
그는 독일인 아버지와 독일파견 간호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혔다. 외할머니와 독일에서 6년을 같이 살아 한국문화가 낯설지 않았다. 2년에 한 번씩은 한국을 찾았다. 광주에 있는 외가와 서울의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한국의 정서를 몸으로 체험했다. 한국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은 늘 신비로웠다. 중·고등학교 시절 잊고 있던 한글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 입학 전에 연세대 한국어학당을 다녔다. 그때 배운 한국어 실력이 탄탄해 지금도 강연을 나가서 한국어로 소통한다.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이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할 때 기분이 좋다.
그는 원래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2학년까지 마치고 서울 삼성경제연구소에서 3개월 동안 인턴십을 했다. 대학 졸업 후 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는 연구원 생활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택한 인턴십이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온종일 칸막이로 가로막힌 책상에 앉아서 일하는 모습을 본 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뭔가를 생각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한국의 전통문화, 그중에서도 한옥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바로 이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건축을 공부해 한옥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사가 되자고 마음먹자 온몸에 전율이 스쳤다.
텐들러 다니엘씨는 원래 경제학도였지만 학옥의 매력에 빠져 건축사의 길을 택했다. 그는 열린 공간인 마당과 대청, 폐쇄적인 공간인 방이 한곳에 어우러진 것이 한옥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옥의 공간개념을 현대건축에 반영할 계획이다. 서상배 선임기자 |
그는 독일로 돌아가 한옥에 관한 자료를 찾았다. 독일어는커녕 영어로 된 한국 전통건축에 관한 책이 없었다. 대학도서관에서 한옥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한글로 된 책 한 권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책을 통해 ‘한옥문화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는 바로 한옥문화원에 한옥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 한옥문화원의 부원장이었던 장명희 현 한옥문화원장으로부터 답장을 받았다. 그는 한옥문화원을 찾아 한옥에 대한 관심과 공부하고 싶은 의욕을 보였다. 외국인이 한옥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지 답사와 세미나 등에 꼭 참석시켰다. 그때 한옥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장 원장은 한옥을 짓더라도 체계적으로 건축공부를 하라고 권유했다. 독일에 돌아간 그는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아헨공과대학교 건축학과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건축학과 공부가 매일 밤을 새워야 하는 힘든 일이었지만 즐거웠다.
독일에서 건축을 배우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울대 한국건축사연구실에서 1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공부했으며 구가도시건축 사무소에서 방문학생 자격으로 실습하면서 한옥 작업에 참여했다. 인턴 기간이 끝날 때쯤 그는 구가도시건축 소장으로부터 “독일에서 대학 졸업하고 올 마음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구가도시건축 소장에게 전화해 “일자리가 있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올 거라고 생각을 안 했는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놀란 듯한 목소리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전화로 연락한 다음 날 구가도시건축 사무소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짐을 싸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구가도시건축 사무소에서 4년 동안 근무하며 한옥을 설계하는 동시에 일반 건축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발주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설계의 기본기를 다졌다.
구가도시건축에 근무할 때 처음 설계에 참여한 것은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11평 규모의 미니 한옥이었다. 아담한 한옥이었지만 안방, 대청, 부엌, 서재, 화장실 등 필요한 것은 다 배치했다. 설계를 위해 실측하고 현장에서 봤을 때는 어둡고 규모가 작아 ‘왜 이런 한옥을 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신 힘을 기울인 덕에 눈에 띄는 한옥이 완성되자 건축주와 동네 주민들이 놀랐다. 규모가 작은 만큼 입주할 때 쓸모없거나 자리만 차지하는 물품에 대한 과감한 처리가 필요했다. 스몰라이프의 실천이 필요했다. 한옥 설계에 참여하고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오자 그는 자신감을 가졌다.
4년 동안 구가도시건축에서 경험을 쌓은 뒤 그는 동료 건축가와 공동으로 을지로에 건축사무소를 냈다. 자본금이 많지 않아 낡은 4층 건물의 꼭대기 층을 임차했다. 쓸모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손수 페인트칠을 하고 창호와 전기배선 등도 직접 했다. 건물주인은 “낡은 공간을 맘대로 해도 되는데 뭘 해 달라고는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건축사무소에 전화기도 없던 초창기에 한옥을 짓겠다는 건축주가 찾아왔다. 한옥에 대해 영어로 쓴 글을 건축주의 미국인 영어 강사가 구글에서 검색해 텐들러 다니엘씨의 사무소 주소를 가르쳐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영어로 쓴 한옥 관련 글 때문에 미국에서 건축가를 소개한 것이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건축주와의 소통을 통해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은평 한옥마을에 첫 한옥을 지었다. 그는 돈의동과 채부동, 계동 등에 10채의 한옥을 지었다. 평균적으로 보면 1년에 한옥 1채를 설계하고 지었다. 그의 건축사무소는 한옥은 물론 일반 건축물도 설계하고 있다.
그는 궁궐보다 고택을 더 좋아한다. 화려한 장식이 없는 단순한 고택의 매력을 한옥 설계 때 반영한다. 석회로 처마 끝을 하얗게 마무리하는 대신 궁궐 구조인 막새기와를 사용하는 것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은평 한옥마을에 지은 첫 작품의 처마 끝은 석회로 마무리했다. 그는 고택을 좋아해 틈만 나면 경북 봉화지역을 찾는다. 고택이 아름다운 것은 불필요한 장식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한옥을 짓고 살려면 소박한 스몰라이프가 이뤄져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그가 한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향인 한뮌덴의 정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은 인구 2만50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800년 전에 만든 중세시대의 건물이 700채 정도 남아있다. 온 시내가 건축물보호법으로 보호를 받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시내 답사를 나가면 선생님들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옛것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는 한옥의 공간개념을 현대건축에 적용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열린 공간인 마당과 대청, 폐쇄적인 공간인 방으로 나뉜 한옥의 공간을 현대건축물을 설계할 때 반영하면 근사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옥에 쓰이는 재료 또한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옥의 창호와 한지 등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외국의 고건축물은 동경하면서 한옥 등 옛 건축물은 불편하고 새로 지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점을 안타깝게 여겼다. 대학 졸업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익선동 한옥 밀집지역을 찾았을 때 한 주민이 “우리 동네는 너무 낡아서 재개발할 때가 됐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강연 때 독일 국민들의 옛 건축물에 대한 인식을 설명한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한옥을 설계할 때 행복하며 만족하는 마음을 갖는다. 한옥 건축은 규모가 작아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건축 설계를 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독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배웠다. 독일이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잘돼 있어 돈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학교에서 ‘돈보다 가치 있는 것을 하라’는 교육이 한옥 설계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텐들러 다니엘씨에게 의미 있는 것은 한옥이다.
건축학과 함께 도시계획을 전공한 텐들러 다니엘씨에게 서울의 도시재생 정책은 신선했다. 낡은 주택을 다 밀어버리고 재개발하면 머잖아 서울의 매력은 소멸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독일 친구들한테 일본 건축물은 처음에는 깔끔하고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금세 답답하고 비슷비슷해 싫증이 난다는 평가를 들었다. 텐들러 다니엘씨는 서울의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배치된 한옥의 모습에 반했다. 서울의 옛 골목길은 계획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생겨났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좋아한다. 그는 그런 한옥을 설계하고 짓고 있다.
텐들러 다니엘은…
●1980년 독일 카셀 출생 ●2004년 독일 괴팅겐대학 경제학과 졸업 ●2010년 독일 아헨공대 건축 및 도시계획학과 학사·석사 졸업 ●2008년 서울대 한국건축역사 연구실 교환학생 ●2010년 구가도시건축 근무 ●2014년 어번디테일 공동대표 ●2017년 독일 친환경 및 생태건축 자격 취득 ●독일 건축사
●1980년 독일 카셀 출생 ●2004년 독일 괴팅겐대학 경제학과 졸업 ●2010년 독일 아헨공대 건축 및 도시계획학과 학사·석사 졸업 ●2008년 서울대 한국건축역사 연구실 교환학생 ●2010년 구가도시건축 근무 ●2014년 어번디테일 공동대표 ●2017년 독일 친환경 및 생태건축 자격 취득 ●독일 건축사
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