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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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늘자… 교통사고 줄었다 [이슈&현장]

교통비 지원에 음식점 할인도 / 작년 부산서 5280명 반납 / 전체 사고는 주는데 노인 사고 늘어나 / 노화로 기능손상·인지능력 저하 원인 / 사고예방 대안으로 ‘자진반납’ 떠올라 / 전국 지자체들 적극 동참 독려 나서 / "고령운전자들 스스로 신체능력 확인 / 제도 거부감 느끼지 않게 접근 필요"
“앞에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를 보고도 브레이크를 밟지를 못했어요. 머릿속으로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리는 그대로 액셀을 밟고 있었습니다.”

24년의 무사고 운전 경력을 자랑하는 강기륜(75)씨는 서울 양천구 신정6동 주민센터를 찾았다. ‘어르신 운전면허 자진 반납’ 신청 창구에 앉은 강씨는 지갑 속에서 운전면허증을 꺼냈다. 4년 전 운전면허증을 갱신할 때만 하더라도 흑발의 장년이던 강씨의 머리카락과 눈썹에는 백발이 두드러졌다. 강씨는 “조심해서 운전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대응을 못해 아찔한 순간을 지난해 여러 차례 겪었다”며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부터는 아예 운전을 안 하려고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강기륜(75)씨가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신정6동 주민센터를 찾아 ‘어르신 운전면허 자진 반납’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창훈 기자

양천구는 지난 2일부터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초로 관내 거주 고령운전자(만 65세 이상)를 대상으로 운전면허증 반납 신청을 받고 있다. 신청 후 지정된 날짜에 다시 동주민센터를 찾아 도로교통공단 직원에게 반납하면 구에서 ‘운전면허 졸업증서’를 제공한다. 10만원이 충전된 선불교통카드도 추후 지급된다. 구는 지난해 부산시에서 실시한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인센티브제’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이를 벤치마킹해 올해 2500만원을 관련 예산으로 편성했다. 강씨는 “친구들 만날 때마다 면허증 반납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할 것”이라며 “자주 걸어 다니면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니까 (면허증 반납은) 우리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줄어드는 데… 고령운전자 유발 교통사고는 늘어

급격한 노인 인구 증가로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늘자 지방자치단체와 도로교통공단·경찰청이 ‘고령운전자 자진 면허증 반납’ 독려에 나섰다. 자율적인 면허 반납으로 고령운전자 유발 교통사고 건수를 줄이겠다는 시도로 부산에서만 지난해 5000명이 넘는 고령운전자가 면허증을 반납했다. 전문가들은 인센티브 제공과 더불어 고령운전자 스스로가 신체능력 변화를 깨달아 자진 면허반납 제도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고령운전자 유발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4년 2만275건에서 2017년 2만6173건으로 해마다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2만3552건에서 21만6865건으로 감소하는 바람에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비율은 9.1%에서 12.1%로 늘었다. 발생 건수 감소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가 줄어드는 동안 고령자 유발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4년 763명에서 848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2017년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웃도는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다.

이원영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정책실장은 ‘고위험군 운전자의 주요 사고원인 분석연구’ 보고서에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의 요인을 분석한 결과 관찰 실패와 부주의로 반응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현상이 주로 관찰됐다”며 “노화에 따른 기능 손상과 인지능력 저하가 도로 위의 위험요소를 지각하는 데 실패하거나 착오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운전자 5280명 면허증 반납한 부산시… 사망자 41% 감소

고령운전자 운전면허증 자진반납제도는 고령운전자를 줄이는 동시에 운전자의 이동권을 강제로 제약하지 않는 방식으로 평가받으면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예방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한 고령운전자는 1만1913명이었다. 전년(3681명)보다 3.2배 급증해 최초로 연간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인원이 최초로 1만명을 돌파했다. 2015년 1415명, 2016년 1903명으로 2000명을 넘지 않던 고령운전자 자진 면허증 반납 인원은 2016년 경북 포항시, 지난해 부산시 등 지방자치단체의 인센티브 제공에 힘입어 대폭 늘었다. 서울 양천구와 경남 진주시는 올해부터 면허증 자진 반납을 추진한다.

지난해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면허증 반납 실적을 기록한 부산에서는 전체 반납자의 절반에 가까운 5280명이 운전면허증을 스스로 포기했다. 부산지역의 자진 반납 건수가 2017년 466건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12배가 늘어난 것이다. 

부산시는 일본의 고령자 운전면허증 자주반납제도를 모방해 면허증을 반납한 노인에게 음식점과 의료기관, 목욕업 등 상업시설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어르신 교통 사랑 카드’를 제공했다. 추첨을 통해 운전면허증 반납자 중 400명을 추첨으로 선정해 10만원이 충전된 후불교통카드를 지급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에서 해당 사업을 벤치마킹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올해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4000명에게 교통카드 지원하고 어르신 교통 사랑카드 협력업체도 5000여곳으로 늘려 노인 교통복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령운전자가 감소하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대폭 감소했다. 지난해 부산지역 고령운전자 유발 교통사고 사망자는 45명(잠정)으로 2017년 77명에서 41.6%(32명) 줄었다. 백옥선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자발적 반납 유도와 함께 노인 친화적인 교통인프라 구축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며 “운전 포기를 강요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고령운전자에게 적합한 검사방법을 개발하고 면허증 갱신주기를 단축해 고령운전자 스스로가 자신의 운전 가능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실장은 “미국의학협회와 고속도로교통안전위원회에서는 의사의 검진 후 운전을 중단하게 된 고령운전자에게 운전중단 사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사후관리를 하는 상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갑작스러운 운전중단으로 상실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소외감이나 우울 증상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창훈 기자, 부산=이보람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