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평양을 처음 방문했는데 그 8년 사이에 평양이 빠르게 변하고 있더군요. 예상보다 더 많은 곳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개발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면 녹지나 광장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도시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줄여야 합니다.”
지난 16일 서울 서교동 프라우드건축사사무소에서 만난 임동우(42)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평양의 변화를 걱정했다.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한 그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도시의 사례를 연구했다. 임 교수는 “체제가 바뀌면 건축이 바뀌고 도시와 사람도 변한다”며 “중국이나 동유럽 사례를 보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는데, ‘북한은 먼저 준비하면 그것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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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가 16일 서울 서교동 프라우드건축사사무소에서 평양의 변화와 미래를 설명하고 있다. 임 교수는 “평양은 사회주의 도시가 중요하게 생각한 공간의 평등성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자본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
그는 2011년 저서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에서 처음으로 평양을 도시적 시각에서 분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공로로 2013년 뉴욕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은 평양의 주요 건물과 토지 통계, 설계 도면 등을 담았다. 책을 접한 많은 이들이 어떻게 이런 연구가 가능했는지 경탄할 정도였다.
임 교수는 “2010년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고, 하버드대 도서관에 들어오는 북한 건축잡지 ‘조선건축’이 꽤 오래전 권호부터 있었다. 여기 나오는 도면을 참고하거나 항공 사진이나 건물 사진을 보면서 일일이 도면을 그리는 수작업을 거쳤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에도 ‘북한 도시 읽기’(2014년), ‘도시화 이후의 도시’(2018년) 등 평양과 사회주의 도시에 관한 책을 꾸준히 냈다.
임 교수는 평양을 비록한 북한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8년 전에는 북한 도시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평양에도 전기가 들어오느냐, 건물은 무너지지 않느냐 등 자극적인 질문을 주로 했다”며 “최근에는 강연을 가면 나중에 평양 어디에 부동산 투자를 하면 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웃음)”고 말했다. 임 교수는 “대동강변 개발이나 고층 주거지 개발 등을 예상했는데 ‘여명거리’ 등을 보면 너무 빠른 시간에 현실화되고 있다”며 “공장지대를 활용한 개발이나 농업지대를 활용한 개발이 가속화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평양의 변화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던 것은 평양이 기존 사회주의 도시들이 겪은 변화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임 교수는 “사회주의 도시가 변해가는 모습은 대체로 비슷하다”며 “1990년대 동유럽이나 이후 중국, 최근에는 베트남 도시가 변화하는 것이 결국 평양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상업시설의 변화가 하나의 예다. “과거 북한 상점의 벽면은 ‘쇼윈도’가 아니라 단순히 ‘창’의 개념이었다”며 “최근에는 쇼윈도와 간판이 커지고 화려해져 점점 더 고객을 끌기 위한 자본주의적 요소가 발견된다”고 분석했다. 상업시설이 밀집하면서 점차 현대 자본주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개인이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이 모든 변화가 가속화됐다”며 “결국 북한 주민들도 개인의 부를 인정해주면 돈을 더 벌어서 넓은 집, 채광이 좋은 집, 경관이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고 이것이 도시에 투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서 그곳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 욕망, 편의 등 이 모든 게 상호 작용을 하며 형성된다”며 “체제가 큰 무게로 누르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개인의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이 체제의 힘을 밀어내면 물리적 변화가 나타난다”고 했다.
평양과 서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는 “‘토지를 누가 소유하느냐’가 근원적 차이이고 이것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서울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불평등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부자들만 잘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계획되지는 않았다”며 “도시계획은 모두가 잘살기 위해 만들지만 그 안에서 토지를 소유하는 주체의 문제, 개발에 접근할 기회의 문제라든지 이런 차등화가 누적되다 보니 비정상적인 공간의 불균형,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한국도 처음에는 대규모 개발을 최고로 삼았지만 탈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원이 많아야 하고 아파트가 좀 없더라고 시민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광장의 가치, 녹지의 가치에 대해 뒤늦게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평양의 많은 공간은 자본의 시각에서는 유휴부지다. 임 교수는 대동강변이나 철로 변 등은 자본이 들어가면 순식간에 개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을 잃지 않으면서 자본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