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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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왜 페미니즘에 등을 돌렸나

[스토리세계] 페폭사 인터뷰
성차별 문제와 여권신장을 위한 페미니즘이 극단적이고 과격한 형태로 변질되면서 페미니즘 피해사례를 모으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 작가, 성폭력 무고 피해자 박진성 시인,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탄생한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문성호(29) 대표, 직장인 전영(28), 박예슬(20)씨 등이 그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온라인상으로 페미니즘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극단적 페미니즘 실태를 기록하기로 하고 ‘페미니스트들의 폭력을 기록하는 사람들’(페폭사·가칭)이란 모임까지 만들었다. 대표는 전영씨가 맡았다.

페폭사는 지난해부터 페미니즘 피해사례를 모으겠다는 글을 올리고 온라인과 유선 상으로 페미니즘 피해제보를 받았다. 반응은 뜨거웠다고 한다. 오는 4월에는 제보 받은 내용을 토대로 사례집을 엮어 출간하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페미니스트들의 폭력을 기록하는 사람들’(페폭사) 모임. 왼쪽부터 오세라비 작가, 박예슬씨, 당당위 김동균 이사, 당당위 문성호 대표, 전영씨, 박진성 작가.
◆ 왜 페미니즘에 등을 돌렸나

전영=“2017년 11월 한 성폭력 무고 사건을 접했을 때였다. 당시 페미니즘이 섣불리 사건을 판단하고 욕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트위터에 올린 적이 있다. 페미니즘일수록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글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더니 어느 순간 수천명에게 욕을 먹었다. 전 여성이지만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이들에게 성적인 욕설도 들었고 정신적 충격도 많이 받아 결국 고소를 결심했다. 고소에 대한 법적 자문을 받으니 트위터가 해외서버라 고소할 수 있는 사람이 수천명 중 열명도 안 되더라. 그들도 대부분 기소유예로 끝났다. 트위터에 찾아보니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이슈가 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이슈가 되지 않은 개인적인 페미니즘 피해사례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세라비=“지난 4년 6개월간 메갈, 워마드 등 레디컬 페미니즘을 집중 모니터링해왔다. 소위 20대 ‘영페미’에서 여고생 ‘영영페미’로 갈수록 언어 수위가 상식을 뛰어넘더라. 그들은 미러링이라고 하는데 그 수준이 아니다. 한 여고생한테 받은 사례를 보면 꽃무늬 원피스에 화장하고 갔더니 페미니스트 친구들이 ‘한남충에게 잘 보이려고 그랬냐’, ‘XX을 꽂아라’, ‘X빨’.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완전히 적나라하게 반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거다. 이건 페미니즘이 아니라 혐오다. 혐오로 물든 페미니즘을 사례집으로 만들어 눈앞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진성=“그들은 잔혹하기도 했다. 무고를 당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거기에 댓글이 달렸는데 ‘네가 예수냐? 죽었다가 부활하냐’ ‘부활하지 말고 재기해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심지어 박진성 예수설까지 돌았다. 사람이 할 짓인가.”
오세라비 작가(왼쪽)와 박예슬씨.
◆ 본인이 비판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이었나

문성호=“이들은 허위사실을 확인 없이 퍼뜨렸다. 저뿐만 하더라도 당당위 활동을 하다보면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많이 받는데 전혀 다른 사실이 공유되고 있다. 내가 어느 지역에 간 적도 없는데 갔다고 하거나 성소수자를 빗댄 조롱까지 들어온다. 이수역 사건도 대표적인 사례다. 남성이 발로 차지 않았다는 경찰 수사결과까지 나왔지만 이들은 경찰을 믿지 못하겠다고 남성을 살인미수자로 몰고 있다. 인터넷에 어떤 글이 올라왔을 때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다면 확인 없이 허위사실을 유포한다. 페미니스트들이 합리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하는데 극단으로 치닫아 이제는 이성적인 논쟁이 안 되고 있다.”

오세라비=“언어폭력도 잔혹하다. 메갈리안 사이트에서 쓰는 용어 100가지를 정리한 게 있었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양반이다. 그때는 희화, 조롱 수준이었는데 현재 워마드에서는 성적인 언어폭력이 난무한다. 1970년대 초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이 남성의 성본능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을 보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수준은 더 심각하다. 워마드 운영자 아이디가 ‘느개비XX’라는 데 자신의 부친을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을까? 초등학생들도 한남충, 재기해를 농담처럼 뱉고 있다. 이제는 혐오 가득한 이상한 시대를 종식할 때가 됐다.”

박진성=“메갈리안이 공격받으니 ‘나도 메갈이다’, 워마드가 공격받으니 ‘나도 워마드다’. 일각에서는 온건 페미, 급진 페미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지금은 (구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메갈, 워마드의 영향을 받았고 래디컬 페미니즘이다. 한 페미니스트 트위터리안이 올린 글을 보면 ‘한남들은 재밌다. 재기해, 남기해, 민기해, 다 ‘기’자 돌림이다’. 이게 할 얘기인가. 남성이면 그냥 싫은 거다.”
박진성 작가.
◆ 페미니즘 피해 사례를 모으고 있다. 일부 소개해 달라

박진성=“한 술집 사장의 얘기다. 여성 한 명이 술을 먹다가 취했는지 그에게 남성혐오 노래로 알려진 ‘국자해’라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더라. 사장이 틀어줄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바에 올라가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결국 한 손님이 신고했고 경찰이 귀가조치시켰다. 온라인에서만 행해지던 혐오가 현실로 나온 사례다. 한 택시기사의 사연도 인상 깊었다. 택시기사 한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에 대한 비판을 했더니 워마드에 좌표가 찍혀서 이분의 택시 번호판, 메신저 아이디, 전화번호까지 유출됐다고 한다. 워마드에는 합성된 그의 나체사진이 돌았고 협박전화까지 걸려왔다. 택시기사는 결국 33명을 고소했고 정신적으로 힘들어 입원까지 했다.”

오세라비=“유명 여자대학에서 페미니즘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못 이겨 편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학생의 사연도 있었다. 과 선배 일부가 후배들에게 페미니즘을 강요한다고 하더라. 군대식 문화까지 있어 그런 선배들은 ‘페미장교’라고 불렸다. ‘여기에 서명해라’ ‘청원에 참여해라’ ‘꾸미지 마라’ 등을 강요하니 여대생이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호소했다.”

전영=“혜화역 시위가 궁금해서 구경 갔다가 봉변을 당한 남성분의 사연도 있었다. 참가여성들이 떼로 몰려와 ‘구속해’, ‘소추냐’라고 욕설하고 심지어 일부는 침을 뱉고 폭행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했는데 여성들이 남성을 몰카범으로 몰아 휴대폰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박예슬=“저는 제 얘기를 하고 싶다. 강남역 사건 때 ‘여자라서 죽었다’는 트윗이 많이 등장했다. 당시 저는 한 기사에서 유족들이 그런 얘기 안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봤는데 거기에 공감하는 글을 올렸다가 공격을 당했다. ‘네가 안 당해봐서 모른다’로 시작해 ‘우린 다 당했어’, ‘너 머리가 비었다’, ‘너도 저런 사람들한테 죽을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비꼬더라. 굉장히 충격을 받아 여자 선생님에게 상담했더니 도리어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인데 네가 잘 못 알고 있다. 넌 성 감수성이 부족해’라는 말을 들었다. 모두가 피해자라고 설득하려는 듯이 말했다. 다 제가 틀렸다고만 했다.”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문성호 대표.
◆ 현재 페미니즘이 여권 신장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박진성=“페미니스트들이 성폭력 피해자를 도울까? 모든 사례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에 집착하는 이유는 도움 명분으로 자신의 무엇을 쌓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세라비=“비슷한 제보가 들어왔다. 대중에 알려진 사람한테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였다. 이를 메이저급 여성단체에 알렸더니 시큰둥했다고 하더라. 가해자가 거물이라는 이유였다고 한다. 지금 (피해자와) 상담 중인데 충격으로 상태가 너무 안 좋다. 거기서 드는 생각이 여성단체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냐는 것이었다.”

문성호=“자기보다 상위직책의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분의 사연도 있었다. 이분도 여성단체가 돕지 않았다. 뭐가 문제였냐면 위력으로 성폭행했던 가해자가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한 거다. 그 중 일부는 가해자와 성적인 서비스로 거래를 했는데 해당 피해 여성(도 그랬을 것으로 생각해) 못 믿었던 거다. 피해 여성은 고결한 피해자여야 하는데 (그리) 믿어지지 않아 돕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례를 고르더라.”
◆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인가

오세라비=“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거다. 제가 항상 얘기하는 게 ‘이퀄리즘(평등주의)’이다. 광기의 시대를 멈추기 위해서는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고 페미니스트들이 그동안 여성들에게 가한 것을 제시해 경종을 울려야 한다. 그것이 사례집을 내기로 한 목적이기도 하다.”

박진성=“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인권 아젠다를 내세우면서 다른 이익을 챙기지 말아야 한다. 출판계통은 이미 페미니즘에 장악됐다. 페미니즘 책이 잘되다 보니 페미니즘 지지하는 책이 수백권이다. 언론도 페미니즘으로 장사를 한다. 과장하고 미화하고. 정치인들은 페미니즘을 주장해 표를 달라고 한다.”

문성호=“범죄 피해자 중 남성도 있지만 지원하는 단체가 하나도 없다. 반면 여성을 지원하는 단체는 많다. ‘당당위’가 무고나 무죄추정 위주로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남성 피해자를 집중적으로 구제하는 곳도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자신의 이념을 분노와 혐오로 표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로잡기 위한 게 돼야 한다. 과거 페미니스트가 여성인권 억압에 대해 했던 말 중에 ‘남자든 여자든 뭐든 할 수 있다’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요즘 보면 ‘여성은 못해’라고 한다. 여성을 약한 존재로 깎아내리는 모습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대전=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사진= 이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