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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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있어?” “옷 잡지마!”…담배투기 단속반의 어떤 하루 [밀착취재]

[스토리세계] 서초구청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동행
담배꽁초를 버렸다가 적발된 남성. 단속반 제공
“담배꽁초 왜 버리셨어요?”
“제가 지금 바빠서 이만….”
“꽁초 왜 버리셨어요?”
“죄송합니다.”

멀찌감치 간 남성은 갑자기 “아악!”하고 소리쳤다.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에 적발된 분노로 보인다. 이유를 물은 기자에게 죄송하다던 여성은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다 타고 남은 꽁초가 뒹굴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쯤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구청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 4명은 오전에 사당역을 돌고 방금 터미널로 넘어왔다고 밝혔다. 
단속반이 거리에 붙은 경고문을 보고 있다. 김동환 기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7시간 동안 2인 1조로 움직이며, 사당역과 고속버스터미널 그리고 강남역 9번 출구부터 신논현역에 이르는 약 800m 거리에서 폐기물관리법 제8조와 68조를 근거로 꽁초 버리는 이들에게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한다. 적발되면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18조와 같은법 시행령 5조에 따라 보름 안에는 4만원, 이를 넘기면 5만원을 내야 한다.

터미널 단속을 마치고 강남역으로 이동하고자 버스정류장에 들른 윤재술씨는 멀리서 오는 마을버스를 보며 “우리 차 온다”고 말했다. 단속 지점을 오가는 마을버스가 근무지 셔틀버스인 셈이다.
서초구청 단속반 양대영씨의 가방. 김동환 기자
버스 맨 뒷자리에 앉은 양대영씨가 자기 가방을 보여줬다.

가방에는 과태료 부과 내용을 기록하는 단말기, 단말기 보조배터리, 과태료 처분 사전통지서 용지, 풀, 사전통지서 내역을 정리하는 A4종이 여러 장이 들어있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버려진 담배꽁초. 김동환 기자
◆단속 때마다 반발이나 입씨름 빈번···세탁비 요구하는 황당한 일도

“서초구청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방금 단속에 적발되셨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성함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꽁초 투기한 이를 마주할 때마다 단속반은 이렇게 말한다. 당연히 쉽지 않다. 단속에 협조하면 일은 금방 끝나지만, 조금이라도 반발하거나 상대방이 목소리를 높이면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양씨는 “나이 드신 분들과 달리 젊은 분들이 협조를 잘 해주신다”고 말했다. 적발에 수긍하고 과태료 내겠다는 20~30대와 달리 그 이상 연령대 시민들은 배 째라는 식이다. 과태료를 내지 않고 떠나는 이를 제지할라치면, 방금 옷을 잡았으니 세탁비 수십만원을 달라며 요구하는 황당한 일도 있다고 단속반은 입을 모았다.

단속반이 이날 담당구역을 돌며 적발한 인원은 총 23명. 절반 이상이 강남역 거리에서 적발됐다.

일부 건물 관리인은 지나는 단속반이 익숙한 듯 반갑게 인사하며 “꽁초 버리는 이들의 처벌을 더 강화해달라”고 말했다. 건물 바깥 흡연이 1층 상점에 주는 피해가 사회 문제로 대두하는 상황에서 과태료를 더 올려야 흡연자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서다.
강남역 인근 거리에 붙은 담배꽁초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 김동환 기자
◆담배꽁초 투기 예전보다 줄었지만 여전

일부 꽁초 투기자는 단속반이 왜 자기만 잡느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과태료 처분 사전 통지서를 든 두 20대 남성은 기자에게 “우리가 젊으니 잡는 것 아니냐”며 “물론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도 꽁초를 길에 버린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모든 흡연자가 꽁초를 거리에 버리는 건 아니었다.

일부는 들고 있던 꽁초를 캔에 담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누군가는 다 꺼진 꽁초를 손에 쥔 채 자리를 떴다. 단속반은 이전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면서, 시민의식이 개선되고 흡연이 사회 문제로 계속 부각돼 거리가 깨끗해졌다고 했다.
강남역 인근 거리에서 단속 중인 단속반과 동행 중인 기자. 단속반 제공
“선생님, 서초구청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반입니다. 방금 꽁초를 길에 버리셨습니다.”

신논현역 인근 교보타워 앞에서 단속반에 적발된 한 남성은 “아, 왜 여기서 담배를 피우자고 그랬어!”라고 옆에서 같이 흡연한 이에게 소리쳤다.

단속반에 화가 난듯 퉁명스레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말한 남성은 기자가 다가서자 얼른 자리를 떴다.

함께 적발된 남성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단속반에 “010-1234-5678”이라고 말해 보던 이를 당황케 했다. 다른 이에게 안내 메시지가 가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단속반의 강조도 소용없어 보였다.
강남역 인근 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 김동환 기자
◆3개월간 강남역 인근서만 단속 1900여 건, 과태료 약 8000만원

또 다른 남성은 인도가 아닌 조경용 화분에 담배를 버렸는데도 무단투기냐고 단속반에게 따졌다.

꽁초 투기로 적발된 여성이 순순히 응하면서 비교적 순조롭게 일과를 마무리하는 듯했던 단속반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다.

적발된 여성의 남자친구가 근처 건물에서 나오더니 “(여자친구가 담배를 버린) 증거가 있느냐”며 단속반의 명찰과 옷을 찍기 시작했다. 남성의 행동에 당황한 여성은 자기가 꽁초를 버렸다고 거듭 말했다.

구청에 민원 넣겠다며 여자친구를 데리고 자리를 뜨는 남성을 본 단속반 얼굴에는 허탈함만 가득했다.
인도 화분에 버려진 담배꽁초. 김동환 기자
김경중씨는 “구청에 민원을 넣더라도 있는 사실만 말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며 “없는 말을 지어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힘든 일도 있지만 깨끗해진 거리를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는 단속반에게 “꽁초 투기자가 사라져 할 일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김씨는 “자식 세대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 아니겠냐”고 답했다. 다만 그는 “시민의식이 완전히 개선되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초구 관계자는 “지난해 11월1일부터 올 1월27일까지 최근 3개월간 강남역 인근 단속 지역에서 담배꽁초 무단투기 총 1922건을 적발했다”며 “과태료 총 7794만원을 거둬들였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