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4일(현지시간) 비건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북측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주스페인 북한대사를 만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치러진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을 벌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건 대표가 남북 간 경계인 판문점이 아닌, 북한의 수도 평양을 방문한다는 점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한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간 국면을 타개한다는 상징적 방문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외교가에서는 평양에 미국 공관이 없다는 점을 들어 본국과 소통 면에서 불편함이 있는 것을 미국 측이 감수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직접 전달받을 수 있는 평양에서 회담할 시 북측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받을 수 있어 효율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연합뉴스 |
비건 대표가 한국 도착 직후인 5일이 아닌 6일로 평양 방문 시점을 늦춘 것도 협상 전략의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에서는 5일 밤(한국시간 오전 6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예정돼 있다. 이 자리에서 2차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가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내용과 비건 대표의 평양 방문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예상대로 2차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를 못 박은 뒤 비건 대표가 평양을 방문해 협상을 진행한다면, 이는 양측 모두 “정상회담이 반드시 열려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함을 의미한다. ‘배수의 진’을 친 형국에서 북·미간 대화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혁철 전 스페인주재 북한대사. |
평양을 방문할 비건 대표는 지난 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앨리슨 후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과 함께 차량에 올라 외부로 향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평양을 방문하기까지 비건 대표의 동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따라서 비건 대표는 평양 방문 시 육로를 이용하거나 오산 공군기지에서 군용기를 통해 이동하는 방안, 베이징을 경유해 고려항공을 이용하는 방안, 판문점이나 제3의 장소에서 헬기를 이용하는 방안 등 모든 가능성이 제기된다. 평양 도착 이후에는 6일 당일에 협상을 마무리하고 돌아오기보다는 평양에서 하루 이상 체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